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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Oct 29. 2017

위미를 거쳐 쇠소깍에 닿다

올레 5코스 걷기2_2014년 10월 26일

한참을 쉬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위미항은 꽤나 넓은 항구다. 다른 항구와 달리 너른 느낌이 호주의 일부 항구를 연상케 한다. 너른 항구에 정박한 배들이란 언제나 묘한 그리움을 주기 마련이다. 항구를 빙돌아가며 길이 나 있다.  좋은 항구다. 이곳을 지나면 좀 더 도시와 가까운 거리와 주택이 나올 게다. 가끔 사람들의 블로그를 읽어보니 이곳 이후부터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서귀포와 관광지에서 가까운 장소이니 당연한 노릇이 아니겠는가.


항구를 지나자 예상대로 깔끔한 아스팔트 도로와 돌담이 나왔다. 잘 정돈된 느낌이 자본이 여기에도 꽤나 들어왔구나 싶다. 곳곳에 카페도 보이기 시작한다. 길을 걷는데 '마음빛 그리미'라는 이름의 카페에서 사진전을 한다는 표시가 계속 나온다. 투박한 글씨다.  어지간히 손님의 시선을 붙잡아 두려는 모양이다. 이곳의 돌담은 사람의 시선을 잘 붙잡도록 정돈도 잘됐고 이쁘기조차하다.


바닷가에 흩어진 바위들이 누군가 막 던져 흩뿌려놓은 듯한 분위기다. 돌담과 흩뿌려진 현무암 덩어리들이 호젓한 분위기를 만들기 충분하다. 오전 무렵 조용한 햇빛이 따스함을 준다. 앞쪽에 전시된 사진이 보인다. 내친김에 사진을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담한 단층짜리 카페다. 음... 이곳도 나쁘지는 않다. 두 가족 정도가 야외의 벤치에서 음료를 마시며 아이들과 놀고 있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장소여서 살며시 몸을 돌려 입구로 향했다. 멋진 제주 사진들도 있고 조금은 전문가 답지 않은 사진도 있다. 


뭐... 카페의 여흥이라고 생각키로 했다. 사진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저곳에 붙어있는 사진을 구경하고 있자니 전문가스러운 사진도 보이지만 약간 상관없는 사진도 보인다. 전체적으로 일반적인 카페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나름대로 정겹다. 괜히 쉬고 싶지만 여기서 쉬면 일요일이라 예정된 시간을 맞출 수가 없다.


카페를 나서려는 순간 안에 있는 주인인지 매니저가 들어와서 구경하라 한다. 오늘이 사진전 마지막이란다. 신발끈을 풀기 싫어 그냥 지나치려는 사람에게 들어오라고 권유하는데 이를 거절할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들어서니 사진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작가가 어려운 시절을 미국에서 보내면서 명상의 순간을 의미하는 장면들을 찍은 장면들이라고 설명한다. 그러고 보니 사진들이 명상 사진과 어울린다. 한데 전자사진으로 전시된 것은 그 작가의 사진이 아닌 내일 학교라는 봉화에 소재한 대안학교의 학생들이 프로젝트로 찍은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순간 재미있네 싶다. 서귀포에 한국에서 가장 추운 봉화 소재 대안학교의 분교라. 그 분교가 카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재미있는 설정이다 싶었다. 내 아이를 마포의 성미산학교에 보내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이니 아주 반가워한다. 대안학교가 가지고 있는 동류의식이랄까... 한참을 이야기 나누다 아쉬움을 뒤로하며 카페를 나섰다. 다음에 인터뷰를 하러 찾아오겠다는 약속만 남긴 채... 꼭 인터뷰를 하러 오기로 했다.  매니저의 6년여 제주 생활이 듣고 싶다. 

잔잔한 거리와 잘 정리된 감귤밭들을 지나며 길은 아주 한적한 모습을 변해있었다. 간간히 색칠해놓은 창고도 보이고 집들도 약간씩 제 멋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길은 홀연히 남의 집 담을 돌아 나가기도 하고... 아 이것이 예전에 남의 집을 지난다는 그런 올레길 중 하나겠구나 싶다. 잘 짜인 집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카페 혹은 펜션 같은 집들도 모습이 전원풍으로 바뀌고 있다. 도시 자본의 냄새가 난다. 여기까지는 도시로 봐야 하지 않나 싶다. 갑자기 길이 바닷가로 향한다. 해안을 걷도록 되어있다. 물이 꽤나 철썩이며 들어오는데 길은 해안의 큰 바위를 향해 나있다. 순간 약간은 당혹스럽다. 이 길이 이어지려면 길의 흔적이 있어야 할 텐데 길이 없이 바위를 넘어야만 다음 코스로 갈 수 있다.


이 코스는 비교적 아기자기한 느낌이다. 다른 코스처럼 아주 화려하지는 않지만 마냥 늘어지는 느낌도 없다. 거리도 짧은 반면 변화가 많다. 길과 바다와 좁은 골목과 잘 포장된 돌길 그리고 항구까지. 추천하고프기도 하고 다시 한번 들려보고픈 코스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북적댄다. 한해 100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다 어디에 가 있나 했더니 이런 관광지에 와있는 듯하다. 아무리 봐도 올레길은 이미 제 수명을 다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오다가 만난 아주머니들 한 팀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한라산의 물과 바다가 만난 장소인 쇠소깍. 처음 와보는 곳이지만 생각만큼 좋은 곳이다. 다만 관광지다운 상혼이 불타는 것만을 제외하면 괜찮은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다른 관광객들처럼 열심히 사진을 찍고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가족이 같이 오면 좋겠다. 집에 두고 온 아내와 기백이 생각이 절로 난다.


아무리 봐도 올레길은 이미 제 수명을 다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오다가 만난 아주머니들 한 팀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쇠소깍 앞바다를 끝으로 오늘의 여정도 끝이다. 6코스가 시작되는 이정표를 찾으니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12시 40분. 예상된 시간 그대로다. 그런데 이곳은 식당이 마땅한 곳이 없다. 관광지인지라 별로 믿음도 안 간다. 그냥 올라가 봐서 식당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제주 가서 먹겠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서 앉아 관광지에서 점심을 먹는 일은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다. 가게 주인에게도 혼자 와서 먹는 손님이 뭐가 좋으랴.

쇠소깍 도착 초입에서 웬 아가씨가 나를 부르며 설문조사를 해달란다. 한양대 관광학과 학생인데 대학원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란다. 설문조사의 내용은 안 봐도 대충은 알 듯하다. 내친김에 쉬어야겠다면 앉아서 설문을 해 주었다. 오늘 하루 사람이 있었느냐는 말에 이 아가씨가 말문을 연다. 하루 종일 몇 팀을 만나지 못했단다. 혹시라도 젊은 사람이 있을까 게스트하우스에도 찾아가 봤지만 세월호 때문이지 올레길의 생명력이 다한 것인지 모르게 젊은 사람을 찾을 길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쇠소깍에 도착했다. 지금부터는 올레꾼이 아니다. 관광객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관광지를 즐겨보기로 했다. 사


나 역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사람들을 만나볼 수가 없어 의아하고 아쉽다는 이야길 했다. 차라리 젊은 아이들을 만나보니 자동차나 자전거 여행도 여행이지만 무엇보다도 스쿠터 여행이 인기고 대세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실제로 걸으면서 여러 팀들의 젊은 여행자가 스쿠터를 타고 지나는 모습을 보았다. 나도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힘들게 걷지 않아도 되고 차를 타고 휙지나는 것보다는 생생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쇠소깍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 아가씨를 다시 만나 다른 올레꾼을 만났느냐는 말에 한 팀을 만났다며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좋은 논문을 쓰라는 이야기 하며 뒤돌아 섰지만 걷는 사람이 실제로 없다는 사실은 조금은 슬픈 사실이다.

자동차나 자전거 여행도 여행이지만 무엇보다도 스쿠터 여행이 인기고 대세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천천히 걸으며 정류장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내가 타야 한 버스가 눈앞을 지난다. 아차 싶어 힘든 발을 무시하고 냅다 뛰었다. 여기서는 버스를 한번 놓치면 얼만큼을 기다려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은 타고 봐야 한다. 다행히 내가 뛰어오는 모습을 보았는지 운전사가 나를 기다려 준다. 그렇게 5코스는 끝이 났다. 이제는 제주 터미널까지 1시간여 만에 가면 된다. 그동안 힘든 여정을 마치는 졸음을 청하기만 하면 된다.


배는 여전히 고프고 설문의 대가성으로 제공해준 귤 몇 개가 내 빈속을 채우고 있었다. 그래도 이나마 있어 다행이다. 오늘 간식이 배낭에 남아있지 않으니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는 사이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리더니 종점인 터미널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휴... 1박 2일이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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