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삶의 이퀄라이저가 ‘플랫’으로 초기화된 기분
서문.
삶의 이퀄라이저가 ‘플랫’으로 초기화된 기분
직장 생활을 10년 좀 넘게 했습니다. 여느 회사원들처럼 주5일 근무의 첫날은 월요병으로 시작, 마지막날은 불금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제 자신을 스피커로 비유하면 업무 강도나 각종 사무실 이슈에 따라 월화수목금 닷새 동안 음향이 고르지 못했습니다. 어떤 날엔 베이스가 과도하고, 특정 요일만 트레블이 심각히 부스트 되거나, 몇날 며칠이 지나도 미드레인지 손실이 복구되지 않다가 별안간 기적처럼 딱 알맞은 주파수 대역을 찾지만, 이틀을 채 못 넘기고 본래의 불균질 상태로 돌아가 버리는. 그리고 기다리던 주말. 토요일엔 저음역대와 고음역대를 한껏 키우고, 일요일엔 서서히 모든 음역대를 하향 조절하다가 오후 아홉 시가 넘어가면 아예 0으로 맞췄습니다. 물론 월요일이 쉬는 날일 경우엔 주말 내내 두둠칫 빵빵하게 이 소리 저 소리를 출력해 냈고요.
이렇게 생활하다 갑작스레 퇴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처음 겪는, 출근하지 않는 월요일. 불금이 아닌 그냥 금요일. 월화수목금과 별 차이가 없는 토요일과 일요일. 변화무쌍 예측 불가였던 10여 년치 삶의 이퀄라이저가 대뜸 ‘플랫’으로 초기화된 기분. 월화수목금을 근무일이 아닌 ‘평일’로 대해야 한다는 일이 상당히 낯설었습니다. 어찌 해야 할 줄을 몰라서, 그냥 계속 돌아다녔습니다. 빈손으로 돌아다니기는 영 어색해(회사원일 때 늘 가방을 멨던 게 습관으로 굳었나 봅니다) 미러리스 카메라 하나를 들고 주로 동네를, 이따금 동네 밖 이곳저곳을 걸었습니다.
목적지를 정해 두지 않고, 정말 말 그대로 ‘그냥’ 돌아다녔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일단은 『평일의 의식의 흐름』이라 지었습니다. 평일에 의식의 흐름대로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고 생각한 바를 기록해 놓은 결과물이 이 책입니다. 여러 풍경과 사물, 갖가지 단상들의 스크랩북이랄까요. 그래도 최소한의 두서는 갖춰야 할 듯해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장을 구분했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회사 그만둔 뒤로 사계절을 몇 바퀴나 돌았네요.
의식의 흐름에 몸도 정신도 내맡기고 아무렇게나 평일을 거니는 생활이라니. 한가하고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저도 별수가 없습니다. 이런 시간이, 나의 평일이 너무나 소중해졌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다시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 혹은 그렇지 않음에도 평일의 귀함을 망각하게 될 때. 그때를 대비하여 이 책을 써 둡니다. 묵직한 저음이나 독보적인 고음 없이 ‘플랫’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스피커. 그 소리를 스스로 낼 줄 알았던 나 자신의 한때.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하려고 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원고 분량(사진 제외): 200자 원고지 약 500매
- 사진 수량: 300dpi JPEG 이미지 파일 280컷(봄 59, 여름 88, 가을 65, 겨울 68) / 출간 작업 시 수량 조절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