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犬]-기척

[평일의 의식의 흐름. 봄] #12

by 임재훈 NOWer



사람이 개를 보듯 개도 사람을 본다. 눈 있는 생명체의 시각 활동이 뭐 그리 별스러운 일이겠냐만, 주택가 반려견들에게 ‘관찰 당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 뭔가 좀 재미있고 신기하다. 아무렇지 않기 때문이다. 날 엿보는 시선의 주인이 사람이었다면 반사적으로 ‘뭘 봐?’ 하는 거부감이 들었을 것이다. 이윽고 ‘내 얼굴에 뭐 묻었나? 옷차림이 눈에 띄나? 나한테 무슨 이상이 있나?’ 같은 자기 점검도 진행할 것이다. 나를 향한 낯선 인간의 눈길과 눈초리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일단은 불쾌하다. 낯이 익거나(‘왜 말도 없이 보기만 하지? 내가 먼저 말을 걸어, 말아?’) 자주 보는 인간(‘팀장님이 왜 아까부터 내 자리를 힐끗거리지? 일거리 던지려고 그러나?’)의 경우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고 보면 인기척에 깜짝 놀라는 신체 반응의 동인은 ‘수상한 타인’에 대한 본능적 불쾌감이 아닐까 싶다. 이에 반해 ‘견(犬)기척’은 뭐라 해야 하나, 약간 만만하다. ‘보든 말든, 강아지 씨 당신이 뭘 어쩔 테야?’ 이런 거드름을 피우게 된다. 물론 온순한 데다 시각적으로 ‘귀여워 보이는’ 견종(닥스훈트, 보더 콜리, 웰시 코기, 진돗개, 스피츠, 시고르자브종 등등)에 한해서이긴 하나, 이를 사람에 대입해 보면 아무리 순둥이 타입의 타인이라 해도 강아지마냥 나를 빤히 쳐다보면 썩 편안하지는 않을 테니, 견기척(개의 바라봄)은 어쨌거나 인기척보다는 상대하기 쉬운 성질의 것이다. 게다가, 길에서 만난 개가 한참 동안 날 바라봐 주면 기분이 좋아진다. 열 마리의 견기척이라면 여덟아홉(열에 한둘은 사나운 대형견) 정도는 반드시 즐겁다.* 동네 산책 코스로 주택가 골목을 빼놓지 않는 이유다. 견기척을 즐기러, 개들한테 나를 보여주러 발밤발밤, 설렁설렁.

* 고양이의 경우, 즉 ‘묘기척’이라면 유쾌함의 빈도가 열에 예닐곱 정도로 소폭 줄어든다. 길고양이와의 마주침은 열에 서넛 비율로 나를 죄송스럽게(?) 만든다. ‘조용히 다니시오’라는 팻말 앞에 선 느낌이다. 한 번의 눈맞춤에 내 존재를 들킨 기분이다. 이른바 집사로서 큰소리에 잘 놀라고 귀잠에 오래 들기보다 풋잠을 자주 시도하는 고양이의 습성을 잘 알기 때문인 듯하다. ‘당연히 인간인 내가 더 조심했어야 한다’는 자기 반성이 저항감 없이 내면에 차오른다.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저자 소개. 포트폴리오 /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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