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의식의 흐름. 봄] #11
진정성은 누군가가 해 오고 있는 어떠한 일의 연속선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말이다. 단어 뜻처럼 ‘진실하고 참된 성질’이 그 일의 진행 과정에 내포되어 있는지 아닌지—진정성이 있다/없다—를 판단할 때 사용한다. 진정성은 목적성, 방향성, 계획성, 준비성, 실천성과 연계된 가치다. 일정한 목적과 방향을 설정하고 그에 따른 계획과 준비를 하여 실천해 나가는 중에서만 검증되는 정량적·정성적 종합 지표다. 따라서 진정성이 있다/없다를 따지기 위해서는 기승전결에 상응하는 서사가 필요하다. 이와 대비되는 순정성(純情性)은 사전에 없는, 내가 멋대로 만든 단어다. 나의 감정과 이익, 취향과 호불호 등을 일련의 절차나 제고 없이 곧장 드러낼 수 있는 성질을 의미한다. 임직원 모두의 식습관과 체질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최적의 회식 장소 및 메뉴를 선정하는 일은 진정성의 범주다. 반면에 ‘불금엔 역시 치맥이지’라는 기분으로 퇴근길에 냅다 호프집에 들어가는 행위는 순정성에 해당한다. 진정성이 포토샵과 라이트룸 보정을 거친 jpg라면, 순정성은 포착의 순간이 가감 없이 보존된 raw 파일이다. 진정성은 판단하는 것이고 순정성은 감각하는 것이다. 진정성 판단은 특정 과업의 양태를 발판 삼아야만 그 행위 주체의 성정을 헤아리는 데까지 도달할 수 있는 지각적(知覺的) 사유 활동이고, 순정성 감각은 대번에 그 사람의 단면(현재의 감정 상태)을 노골적으로 목격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시청각적이며 즉물적(卽物的)인 신경 반응이다.
‘오전 열한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차 들어오니까 여기 주차하지 좀 마요. 확 견인해 버릴 테야!’라고 경고하는 말통(일명 약수통)은 그 자체로 누군가의 순정성을 사물화한 이미지처럼 보인다. 단지 말통일 뿐이지만 왠지 슬금슬금 피해 다니게 된다. 인간의 ‘순정한 raw 감정’이 얼마나 강력한 침투력을 지녔는지를 실감한다. 뜬금없는 감상이지만 나이 들수록 나도 모르게 부모님의 말투와 습성이 튀어나올 때마다 내 안에 침투된 부모님의 오랜 순정성을 확인한다. 사람의 손을 탄 모든 대상—무생물과 생물, 물론 나 자신도 포함—을 함부로 다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