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의식의 흐름. 봄] #13
전국 둘레길 완주 스탬프북,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 등등. 한 사람의 ‘비범한’ 행동반경을 짐작하게 해 주는 소지품들. 주로 도심의 인도와 차도, 어쩌다 가끔 고속도로를 밟고 다닐 뿐인 내게 그러한 소지품들은 정말로 굉장해 보인다. 손바닥보다도 작은 스탬프북(스마트폰 ‘둘레길 완주 인증’ 애플리케이션)과 자격증들 안에 팔도강산 방방곡곡의 도보 여행길과 바다와 하늘이 다 들어 있다. 그런 소지품을 획득한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우러러보게 된다. 자기 삶의 X축과 Y축을 최대치로 활용하는 이들이랄까. 양축의 범위를 삶에서 ‘집’으로 좁혀 본다면, 내게는 사다리 또한 비범한 물건으로 보인다. 아파트(공동 주택)에서만 살아 온 나는 집 안에서 사다리를 써 본 적이 없다. 딱히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 주택의 경우 가옥 지붕이나 외벽 수리를 위해 사다리 한두 개쯤은 필수 상비품이다. 또는 마당 정원에 심어 놓은 감나무나 목련목 등 조경수 관리 차원에서도 사다리는 꽤 요긴한 기구다. 거주자의 눈과 손이 집의 안팎과 위아래에 모두 닿도록, 그러니까 집이라는 세계의 X축과 Y축을 확장시켜 주는 사물. 나한테 주어진 (시)공간을 얼마만큼 ‘끝까지’ 동원할 수 있는가. 이것이 내가 지금 감각하는 내 생의 ‘전용면적’을 압도한다. X축과 Y축이 무한할수록 그 사이에 그려 나갈 나 자신의 ‘Z축’은 역동적일 것이다. 가가호호 사다리가 놓인 주택가 골목길을 걸으며, 평소답지 않게 진취적인 생각들로 씩씩해지고 말았다.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