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의식의 흐름. 가을] #23
평일에 아무도 없는 둘레길을 걷다 보면 스멀스멀 변의가 차오른다. 복통은 전혀 없이 그냥 똥만 마려워지는데, 못 참을 정도는 또 아니라서 그냥 계속 걷다 보면 어느새 편안해진다. 희한한 일이다. 집에서 뱃속을 다 정리하고 나와도 매번 그런다. 작가 오다 마사쿠니가 쓴 「식서(食書)」라는 중편소설 속 주인공은 서점만 들어가면 변의를 느낀다. 본인도 명확한 원인을 모른다. 비슷한 처지인 내 입장에서는 매우 공감하면서 읽었다. 나 같은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구만, 하는 위안도 받았다.
멀쩡했던 장이 독행(獨行)의 조건만 되면 ‘급똥 모먼트’를 야기한다? 아마도 심리적 요인일 거라 추측한다. ‘지금부터 나는 혼자다’라는 상황 인식이 신체 반응을 동반하는 것이다. 불안하면 다리를 떨거나 손톱을 뜯는 것처럼.
집에서 둘레길까지는 도보로 약 15분 거리다. 주택가와 대로변을 지난다. 행인들 틈에 있다가 ‘아무도 없는’ 둘레길로 쓱 빠져나간다. 덜컥 길 위에 나만 남겨지는 셈인데 그게 썩 싫지가 않다. 고요한 숲길을 홀홀 독차지하며 걸을 생각에 산책로 초입에서부터 벌써 두근두근한다. 그런데 또 약간은 무섭다. 신나게 걷다가 길이라도 잃으면 어쩌나(실제로 그런 적이 있다.) 싶어 주의하게 된다. 즉 ‘지금부터 나는 혼자다’라는 인식은 ‘드디어 혼자다!’ 도파민과 ‘나 혼자야? 어떡해’ 코르티솔이 뒤섞인 일종의 심리적 혼합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중적 감각을 몸이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변의’라는 오작동이 잠깐 발생하는 게 아닐까.
지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있는 걸 덮어놓고 반긴다거나 무턱대고 두려워 하는 성정이 아니라는 걸 내 변의로 확인하기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든 치우친 인간이었다면 내 몸에서 ‘급똥 오류’가 일어날 일은 없었을 테니. ‘혼밥’, ‘혼술’, ‘혼영’, ‘혼행’ 자주 하는 누군가가 생의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똥이 마렵다고 말한다면, 그냥 아무 소리 말고 곁에 있어 주면 된다. 그러면 아픈 것도 다 낫는다.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