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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리날개 May 13. 2022

조종사의 영어 이야기

용산에서 배웠어. 맞아 그 용산

나는 영어를 잘 못 한다. 영어를 조금 배워보니 유창하게 표현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고 느꼈다. 미국에서 20년 넘게 산 이민자들도 언어 때문에 현지의 주류문화에 참여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래서,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가, 영어를 이 정도 하면, 넘어갈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정도까지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도 쉽지도 않았다. 간혹 영어 어떻게 배웠냐고 물어보던 지인이 있길래, 한참이 지나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생각이 떠올랐다.


대학생 때, 적극적으로 알바를 하며 영어를 배우자는 생각을 했다. 어렸을 적 내 성격은 소심했는데, 목표와 고집은 완고한 편이었다. 그래서, 없던 용기가 많이 생겼고, 당당하게도 미군부대 근처에 가서 알바를 하였다. 당시 내가 일 했던 곳은 서브웨이 샌드위치 가계였는데, 손님들의 대부분이 외국인이었고, 샌드위치 비용 역시 달러로 받았다. 당시 내 시급은 많지 않았는데,  대략 시간당 삼천 원 수준이었던 것 같다. 당시 내가 사는 지역에서 서울로 출근하기 위해 한 시간 반을 소비했고, 사용했던 교통비도 있으니, 돈은 별로 벌지 못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내가 배웠던 것들은 내 삶의 단단한 받침대가 되었다. 당시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다. 화장실을 물어보는 손님에게 손짓으로만 여차저차 설명해 줬고, 스무 살의 부끄러움을 엄청 탔는데, 자꾸 하다 보니, 용기가 생기기 기도 했다. 신선한 채소의 영어 발음을 직접 듣고, 가끔 먹을 수 있었으며(그래서 지금도 내가 양상추와 올리브를 좋아한다^^) 같이 일하는 동료의 영어 표현은 지금까지도 나의 언어의 일부가 되었다. 아 전화로 주문을 받기도 하였으니, 리스닝 실력도 많이 늘었다.


대학생을 마칠 때쯤 나는 남들과는 달리, 휴학 후 해외에서 어학연수를 할 여유도 없이 팍팍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서울 중심에 있는 용산에서 영어를 더욱 긴밀하게 배울 수 있었고, 이 것이 실제로 나의 스펙이 되어서 많은 입사서류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남서쪽으로 향하면, 중국 관제구역이 나온다. 이 때는 라디오를 한국 교신 주파수에서 중국 주파수로 변경을 하게 되는데, 변경하는 순간 한국어는 빠이빠이다(이미 한국어는 안 쓰고 있었지만, 콩글리시가 있었다.) 변경한 주파수에서는 중국말이 쏼라쏼라 들리는데, 나는 이 주파수에 대고, 우리 비행기는 당신네 공역에 진입했고, 지금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보고를 한다. 그러면 잠시 후 중국 관제사는, [중국 발음으로 영어를 말한다] 당신의 비행기를 확인하였고 고도를 몇 미터로 바꾸라고 지시한다. (AIRLINER, Rader Contected, Climb One Zero Tousand Meters - 이런 식이다. ) 문제는 중국인의 성조다. 특유의 계란 두 개를 볼에 넣은 상태로 발음한다는 것 같은 것이 특징이다. 솔직히 알아듣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프로다. 모든 것을 준비하고 대비하고, 적절히 대처한다.


중국은 좀 괜찮았다. 중국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 조금 천천히 얘기해 주는 장점이 있었는데, 이제 필리핀으로 넘어간다. 아까 출발했던 남서쪽 방향에서 계속해서 진행하게 되면, 필리핀 공역인데, 음질이 좋지 않은 통신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깨끗했던 5G Volte 같은 음질이, 성능이 좋지 않은 블루투스 헤드셋으로  연결되어 상대방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상태가 유지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필리핀 관제사의 영어는 유창하다. 이 말은 굉장히 말이 빠르며, 표현이 다채롭고, 동남아 억양이 강한데, 문제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나는 프로다.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상기하며, 내가 필요한 정보와 상대가 필요한 정보만 간략하게, 단어 위주로 전달한다. 오케이. 상대방이 내 무전을 COPY 했다고 말한다. 성공한 것이다. (아마도 운동선수가 해외에서 운동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


 


`영어는 미국의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영어의 소유권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세계인이 모두 사용하는 것이다.라는 식의 표현이다. 나는 다양한 국가를 돌아다니면서, 이 말을 자주 생각하게 되는데,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에 대해 고찰한다. 상대와 내가 대화하기 위해서, 사용하였는 수단이 영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의 표현은 비록 부족할지언정 상대의 의사를 아는 것이 우선순위이다. 영어 표현 자체에 얽매여서, 영어를 못한다거나, 그 나라의 발음은 별로다라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는 특히 영미권에서 영어를 사용할 때 더욱 중요하다.


물론 정확한 표현을 위해서 우리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해도 해도 부족한 것이 영어다. 다만, 본질을 잊지 않으며,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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