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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바이지은 Jun 21. 2022

국시 합격, 드디어 그날이 왔다.

고된 육아와 공부가 인내로 점철된 나의 두 번째 대학시절.

"언니, 아무리 합격률이 높다 해도 국시라는 건 공부를 안 하고 붙을 수는 없어. 공부는 해야 해

열심히 해야 붙고, 적당히 하면 장담 못하고, 안 하면 백 프로 떨어지는 시험이야. "


먼저 국시를 치른 동생이 해준 말이 내내 마음속에 남아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학교에 입학할 때는 4살이었던 아이가 어느덧 7살이 되었고, 동시에 난 국시생이 되었다. 원래 목표가,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모든 공부를 끝내는 것이었으므로 내 옵션에 국시 불합격이란 없었다.


그러나, 세상사 늘 만만한 게 없었으니, 이번에도 그랬다. 아이가 예비 초등이라는 타이틀로 마음이 분주해진 시기였다. 초등 준비를 해야 하니 한글과 수학 학습지를 알아보고 하원 시간을 한 시간 당겨 학습지 시간을 맞추고 학원을 하나 넣었다. 그랬더니 공부시간 삭제, 아이 케어 시간 추가.


본래 남의 아이는 순하디 순한데 유독 내 아이만 까다로운 법이다. 체력이 떨어지고 마음이 조급하면 더 그렇다. 아이들이면 다 좋아한다는 치킨이나 피자도 먹지 않고, 간이 조금만 세도 바로 뱉어내는 바람에 배달 음식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우리집 꼬마의 밥을 챙기는 일도 간단치 않았다. 그러니 아이 하원 후 학원으로 라이딩하고 집에 와 저녁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만 해도 저녁 시간 삭제! 


정말이지 고난은 왜 항상 세트로 오는 걸까. 그것이 인생사 고난 코스의 기본 세팅값일까? 고난과 역경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역사가 얼마나 반복됐으면 엎친데 덮친 격이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내가 왜 이 생각을 하고 있냐면, 이렇게 바쁜 와중에 남편이 발령으로 서울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하루아침에 주말부부가 되었다. 주말부부는 3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다던데, 3대의 덕은 남편 쪽이 쌓은 모양이다.  


주중 독박 육아에 4학년 국시생 생활이라니.. 수업과 시험을 따라가며 동시에 국시 준비를 하자니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그러다 보니 몸에 무리가 왔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어지럽고, 일순간 멍해지는가 하면, 호흡곤란으로 과호흡이 와서 응급실에 가기도 했다. 


병원에서는 검사 수치상 이상은 보이지 않으니, 불안장애, 공황장애일 수 있다고 검진을 받아보라 했다. 증상이 반복되어 우선 심장 기능 검사를 위해 심장내과에 갔는데, 부정맥 진단이 나왔다.  다행히 부정맥 중에서도 착한 부정맥이라는 심실 기외수축으로 운동하고 약 복용하면서 잘 관리하면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하루 종일 이어지는 부정맥 증상은 정말 일상생활을 힘들게 했다.


그러니까, 인생사 노 페인, 노 게인이다. 공짜는 없다. 무엇인가 얻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무엇인가를 내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마음이든, 돈이든, 체력이든, 건강이든, 그 무엇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아, 나는 국시 합격을 위해 정말 많은 것을 지불해야 했다. 인생에서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고난이었다. 일단 건강을 위해 열심히 약을 지어 먹었다. 공부는 해야하는데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았다. 잠을 줄여야 하는데 잠도 줄이지 못할만큼 체력이 바닥날 즈음, 달력을 보니 국시 한 달 전이었다. 이렇게 공부해서 합격할 수 있을까 불안감이 점점 차오르던 찰나에 남편이 양심은 있는지 시험 2주전 긴 휴가를 내고 육아와 집안일을 전담해주었다. 덕분에 겨우겨우 못다 한 공부를 보충해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시험이 끝나고 남편과 함께 늦은 점심을 먹었다. 왠지 망했다는 강한 확신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남편은 괜찮다고 했지만, 난 전혀 괜찮지 않았다. 시험이 어려웠고 아리송한 문제도 많아서 채점해보나마나 이건 불합격이다 싶은 것이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노랫말이 떠올랐다. 그래, 그렇게 공부할 시간이 없었는데, 내가 어떻게 합격을 하겠어. 이제 알바를 알아봐야겠다. 학자금 대출 갚으려면 열심히 일해야겠네.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저녁 6시가 되어 답안이 뜨고, 차분한 마음으로 한 과목 한 과목 채점을 시작하는데,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동그라미 수가 많아지고 있었다. 합격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떨리는 손으로 채점을 마치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얼마나 기뻤던지! 내가 틀렸다고 생각한 답들이 정답인 경우가 많아 다행이었다. 아아- 다 끝났다. 끝이다. 진짜 끝! 가족들에게 전화해 가채점 결과를 전하는데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아, 고백하건대 나는 정말 몰랐다. 내가 수능을 보러 갔을 때는, 이런 힘든 시절이 날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공부, 그냥 하면 되지 뭐! 합격만 하면 꽃길이 펼쳐질 줄 알았다. 원래 뭘 모르면 용감한 법이다. 4년간의 개고생은 면허를 남겼다. 신체적, 정신적 피폐함과 바꾼 나의 면허.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돌봐야 하는 애엄마 만학도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는 다 때가 있다. 때를 지나면 제약이 많다. 근데 또 재밌는 건, 그렇다고 또 못할 건 없다는 것이다. 하면 된다는데, 뭐가 되긴 된다.  


이렇게 한 시절이 갔다. 나의 두 번째 대학시절이자 고된 육아와 공부가 인내로 점철된 한 시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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