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섯손가락 Apr 30. 2024

2-4. 땅콩을 태운 야속한 엄마

웃어른을 섬기는 그런 마음과 태도가 세상의 거친 풍파도 당당하게 맞서 헤쳐나가고, 당신 삶도 굳건히 붙드는 뿌리 깊은 힘이 되었을 것이다. 

땅콩 한 소쿠리가 왔다. 남편 친구가 농사지어서 보낸 선물이다. 그는 나의 대학 동문이기도 하여 특별히 챙기는 일이 잦다. 고마운 마음에 노글노글해지는 저녁이다.


가뜩이나 땅콩에 마음이 약한 이유가 있다. 어릴 적 시골에서는 온갖 콩 농사를 지었다. 노란 메주콩, 검은콩, 강낭콩, 유월콩, 본디, 팥, 녹두... 내가 아는 콩이라는 콩은 죄다 밭에서 농사를 짓고 수확해서 썼다. 그러던 어느 날. 당산 아래 동네로 놀러 갔다. 추수가 한창인 가을날 해거름이었다.


“우리 집에 땅콩 있는데 구워줄까?”


나보다 나이가 두어 살 많은 그 아이가 자랑을 섞어 선심 쓰듯이 한마디 건넸다. 마당 가장자리에는 추수 뒤끝이라 콩깍지와 잡풀을 태우는 중이었다.


“응? 땅콩이 뭔데? 땅에서 콩이 나나?”

“너그 집에는 땅콩 없제? 우리 집에는 쩌어기 있다.”


그녀는 설강 위에 올려놓은 동그란 대나무광주리를 집게손가락으로 멀리 가리켰다. 우리 집에는 없고 자기 집에는 있는 신기한 그 땅콩을 보여주고는 연신 우쭐대며 맛나게 구워주었다. 길쭉하게 생겨서 콩인지 돌멩이인지 모양새로는 알 수 없었지만 노릇노릇 구워진 땅콩이라는 녀석이 안겨주는 맛은 내 미각에 신세계를 열어 주었다.


비릿한 맛 때문에 콩이라는 콩은 한 알도 먹지 않던 때였다. 땅콩은 달랐다. 땅에서 나는 콩이라는 이 녀석은 고소한 향이 입안에 가득 차오르면서 온몸 구석구석을 고소한 세상으로 물들였다. 뇌신경을 타고 머리끝까지 고소함이 가득 채워졌고 양팔을 타고 열 손가락 끝에도, 두 다리를 지나 새끼발가락이 끝나는 지점에도 그 맛이 번져갔다. 그야말로 땅콩 황홀경에 빠진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는 우리 집에는 땅콩이 왜 없냐고, 지금 당장 밭에 심어라고, 그 집에는 땅콩이 있다고, 당장 더 먹고 싶다고... 저녁밥도 먹지 않고 생떼를 부렸다. 손녀를 달랠 길 없던 할머니는 나를 앞세워서 지팡이를 짚고 대밭골창 밤길을 건너셨다.


“월평 사람 있소?”

“아, 아지매가 여기까지 우찌 오셨십니꺼? 이 시각에...”

“이 집에 땅콩이 있다던데... 우리 아아가 저리 먹고 싶다고 했싸니... 대앳 개만 좀 주소.”

“... 우리 집에 땅콩은 없는디...”


주인도 없다고 하는 그 땅콩 소쿠리가 어디 있는지를 훤히 아는 나는 눈길과 손가락 화살을 날리며 가리켰다. 월평 아지매는 어린 아이의 간절한 눈빛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종자로 남겨 둔 소쿠리에서 땅콩 한 줌을 꺼내어 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낯뜨겁고 철없는 행동이다. 종자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고 내년 농사를 위해 보관하는 귀한 씨앗이다. 흉년이 들어 먹을 게 없어도 종자는 건드리지 않는 게 농가의 규범인 것을. 내게 이 세상 첫맛을 선물한 그 아이가 그날 밤 얼마나 혼이 났을지는 상상하기도 거북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이후 눈을 흘기며 나랑은 두 번 다시 놀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게 구해온 땅콩을 굽는 것은 엄마 몫이다. 할머니도 엄마도 땅콩을 어떻게 구워야 하는지 몰랐다. 할머니가 아궁이 약한 불에 잠깐만 구워 보라고 일렀다. 엄마는 착한 며느리잖는가. 그대로 다. 두어 개를 구워서 나 혼자만 먹고 할머니 두 분과 엄마는 내 표정만 살폈다. 땅콩의 고소함은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지만 첫맛을 알려준 그녀 솜씨만큼은 아니었다. 엄마는 왜 그 애보다 못 굽느냐고 투정을 부렸다. 나머지 세 개도 마저 구워달라 졸랐다. 그러자 할머니는 찡긋 눈치를 주었다. 그 눈치가 땅콩을 새까맣게 태우라는 뜻인 줄은 두 번째 땅콩구이가 왔을 때 알았다.


엄마는 그렇게 순종했다. 어린 딸이 간절히 먹고 싶어하는 땅콩을 시모가 태우라고 하니 묵묵히 시키는 대로 따르며 살았다. 그 시절 효도가 다들 그랬을까. 적어도 나의 엄마한테는 그랬다. 맛난 음식이 있으면 언제나 어른 상을 먼저 차렸고, 시어른 결정과 하명에는 묵묵히 따랐다.  덕에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할머니까지 이 세상 편하게 지내다가 가셨다.


그 시절을 생각할 때면 부끄럽지 않게 살았노라 했다. 하늘 아래 부끄러운 일이 없어 마음은 언제나 떳떳하다 하였다.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는 아낌없이 했노라고. 그래서 후회스럽지 않은 세월을 살았노라 훗날 마침표처럼 말씀하셨다.


어떻게 그토록 어른들께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어린 딸의 마음을 짚어보면 안쓰러워서라도 땅콩을 태울 생각은 못 했을텐데... 시모의 판단이 옳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을까? 아이의 계속되는 욕구를 과감히 끊어야 했으므로 시어머니의 결정을 존중하고 따랐던 것일까? 어른 말씀을 거역하거나 토를 다는 언행은 감히 생각지도 못하는 엄마였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거나 생각하면 어른 모시고 사는 시집살이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어른들은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있기에 가치관도 확고하다. 요지부동이다. 그런 시모를 대상으로 거역하거나 반기를 드는 행위는 불화의 시작이요, 상상할 수 없는 불효였으리라.


하지만 어린 딸이 그토록 좋아하는 땅콩을 어떻게 태울 수 있었는지... 자식을 키우는 에미는 새끼의 식욕을 충족시키려는 마음이 본능이고 우선일텐데 어쩜 그렇게 냉정하게 땅콩을 태울 수 있었을지. 그만큼 어른들 말씀을 엄격하게 따라서 그랬는지, 어린 딸의 투정과 끊임없는 욕구를 끊어야 하는 단호함이 필요했는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헤아리기 힘든 엄마의 깊은 마음속 세계다.


엄마는 딸을 가르침에 있어서는  단호했으나 어른들 말씀은 귀하게 귀 기울여 듣고 행동은 신중했다. 당신의 생각과 조금은 다르더라도 어른들 가르침은 그대로 받들어야 한다는 전통을 오롯이 지키며 사신 분이다. 웃어른을 섬기는 그런 마음과 태도가 세상의 거친 풍파도 당당하게 맞서 헤쳐나가고, 당신 삶도 굳건히 붙드는 뿌리 깊은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이전 13화 2-3. 찰주먹밥과 삼강오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