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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Dec 02. 2021

새벽 4시, 살고 싶은 시간.

유방암 말기 환자분 신민경 님의 이야기.

     말기암 환자분의 책을 읽게 되었다.  제목의 새벽 4시가 뜻하는 바는, 이 책을 쓰시면서 자정쯤 진통제를 먹고 글을 쓰다 보면 마약성 진통제가 주는 몽롱함이 걷히고 통증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그 명료한 의식의 시간들이 새벽 4시 즈음이라고 한다. 작가님은 20대 이후에 대부분 이 시간에 깨어있었다고 하시는데. 아, 정말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열심히 사는 분이시구나...



    30대 중후반의 유방암 말기 환자이신 작가분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후, 암성 통증과 사투를 벌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그리고 지금의 일상들을 담아내셨다.  프로 작가가 아닌, 담담한 문체로 자신의 이야기를 여과 없이 진솔하게 쏟아내어 주신 작가님 덕택에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암 환자분들의 세상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다. 암 환자분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들, 내 임종이 내가 생각한 대로 되는 것이 아닌 그 현실, 그리고 암환자로서 겪는 많은 증상들, 특히나 통. 증. 암환자분들께서 마약성 진통제 사용을 꺼리는 이유에 관해 설명해 주셨는데, 삶의 주도권을 빼앗긴 것만 같다고 하신다. 마약성 진통제는 특유의 몽롱함이 통증을 완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할 수 있는 맑은 정신도 흐려지므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다음번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 환자분을 만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증 조절의 장점을 설명하기보다는 그저 가만히 그분의 속상함을 공감해드려야겠다.



 "하루 24시간을 100세 인생으로 치환해보니, 내 인생은 오전 9시가 끝이라고 한다. 오전, 오후, 저녁과 밤이 남아있는데  차가운 새벽이 물러가고 아침을 맞이하자마자 끝이란다. 내 하루는 그렇게 정해졌다고 한다. 설레었는데, 이제 멋진 하루를 살아내리라 다짐했는데"


"이번엔 나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어쩌면 잘 안 될지도 모르겠다고"

 

"이것저것 참느라 내 일생을 다 써버린 느낌이다. 바보같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삶이 자신의 소명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았다는, 그래서 그렇게 원하던 학교에서 국제보건 석사를 마친 후 박사를 앞두고 시한부 선고를 받은 지독히도 독립적이고 인생의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셨던 이 작가님의 삶에서 내 어린 시절 삶의 그림자를 언뜻 보았다.

 




   나는 내 삶을 참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영롱히 빛나는, 이 보물 같은 내 삶이 사라진다면, 어떤 생각을 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내가 완화의학을 하며 만난 분들은 그렇게 자신의 삶의 등이 깜빡깜빡하시는 분들이었다.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길을 걸어가고 계신 환자분들에게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그분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삶의 보석들을 배웠다. 너무나도 흔하고 평범해 보여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그런 삶의 진주들. 저 멀리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캐러 달려 가느라 내 발 밑의 진주를 밟고 지나가 버린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렇게 또 오늘 하루 허락하심에 감사합니다. 이제는 진짜마음의 소리만 듣고 따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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