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대회에 참가하다
띵.
문자가 도착했다.
여성 연설대회 참가자를 모집한단다
연설이라는 것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문자를 받고 생각했다.
'그래, 이건 나를 위한 대회다. 내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전하자'
너무나 흔한 얘기지만, 그래서 지금 어린 세대들은 이런 말이 있었는지조차 모를 수도 있지만, 나는 자라면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여자애가 왜 그렇게 목소리가 크냐 얌전하게 있어야지'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말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적도 있지만, 연설은 내 인생에 예정에 없던 일이다. 연설은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라고 생각해왔었다.
이번 연설대회는 3.8 여성의 날을 기념해서 열리는 행사였다.
부제는 '여성이여, 마이크를 잡아라'
맞다. 그간 여성들은 거대 담론의 중심에 있지 못했다. 거대 담론까지 가지도 말자. 질문하고 내 생각을 주장하는 여성들을 우리는 그간 '여자애가 나댄다, 설친다' 등의 언어로 쉽게 평가절하 해왔고, 성장 과정에서 의욕이 꺾인 여성들은, 아니 나부터도 공개석상에서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다. 손을 들어 발표하기까지 '이게 맞나? 내가 여기서 반론을 제기해도 되는 것인가? 지금 분위기를 나쁘게 만들지는 않을까?'를 수백 번 생각하게 된다. 내 성장과정에서 나는 암묵적으로 그렇게 길들여져 왔다.
그런 내가 연설대회 참가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비로소 내 이야기를 세상에 하자, 라는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가자 인적사항을 적는 란에서부터 장애물이 가로막는다. 바로 '소속'을 쓰는 란이다.
소속이라 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원서에 직업란이 없었으므로 소속이란 것은 직업을 묻는 것인가?
나는 누군가의 소속이고 어디에 속해있는 사람인가?
가정주부는 과연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가정이 직장이고 일터인 나는 어디 소속이라고 작성해야 하나?
비로소 이제야 세상 밖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주장을 내뱉으라고 여는 여성 연설대회에서조차 지원서 작성란에서 이렇게 숨이 턱 막힌다.
나는 소속란을 공란으로 두고, 자기소개서를 이런 문장들로 채워 내려갔다.
안녕하십니까?
멋들어지게 자기소개를 하고 지원동기를 밝혀야 할 텐데요.
그보다 먼저 지원서를 작성해 내려오면서 저는 “소속”란에서 한번 멈칫거려야 했습니다.
이 소속은 무엇을 저에게 묻는 것일까요?
현재 직업이 있는지 여부일까요? 당원이라면 어느 지역구 소속인지를 묻는 것일까요? 아니면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는지 여부를 묻는 것일까요?
이 지원서를 작성하신 분은 그럴 의도가 없으셨겠지만 “소속”이라는 단어 하나에도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는 저는 “대한민국 대표 경력단절 여성”입니다.
난생처음으로 국회의원회관이라는 데를 가봤다.
참가한 모든 이들은 여성이었고 서로의 이야기와 주장을 들으며 동조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때로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성인권 강의를 들으면서 수없이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 들었는데 그때는 와 닿지 않았던 연대, 동지라는 단어가 가진 힘이 절로 피부에 와 닿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서로 눈인사만 나눈 인생 처음 만난 사이들이었지만, 그 공간 안에서 우리는 동지애를 느꼈다. 각자 살아온 삶은 다르지만 우리가 마이크를 잡고 하는 얘기들은 공통점이 있었기에 우리는 그 순간 그 공간에서 만큼은 서로 '연대-하였다'
지금은 훨씬 삶이 나아지지 않았느냐. 나 때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 그런 어려움을 이를 악 물고 버텨내면서 열심히 노력해 지금의 내가 되었다. 여성들이여, 자꾸 불만을 토로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면 나처럼 될 수 있다.라고 주장하신 분도 계셨다.
요즘 꼰대를 지칭하면서 흔하게 쓰이는 '라테는 말이야'가 2019년 3월에는 아직 유행도 하기 전이었다.
나도 단상에 서서 침착하게 내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내 경험담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 차례가 끝나자 조용히 남편이 내 뒤로 와 나에게 꽃 한 송이를 건넸다.
그리고는 말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여보가 최고야. 멋졌어. 잘했어. 고생했다"
왠지 남편의 말에서 물기가 묻어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내 이야기로 최우수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