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 페미니스트의 탄생

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by 감주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괜찮은 건 아니었습니다.

문득문득 화가 나고 무언가가 속에서부터 치밀어 올랐습니다.

내가 왜? 내가 뭘 잘못했는데?


누군가가 내 엉덩이를 움켜쥐고 원하는 않는 행동들을 하려 했기 때문에 그 도피의 방식으로 선택한 사직.

때마침 찾아온 임신과 입덧으로 인해 갖게 된 공백기

호기롭게 재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러 갔지만

"미안하지만, 아이가 어려서 안 되겠네요."라는 답변을 듣고 좌절을 겪어야 했던 경험.

불과 3,4 년 전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것도 다름 아닌 나에게.

그렇게 나는 경단녀가 되어갔습니다.


어린이집에 간신히 아이를 적응시키면서 성인권 강사 양성 과정을 수강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시간에 맞춰 준비하고 아이를 등원시키려니 아이나 나나 머리는 그지 산발이 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을 틈도 없이 버스 타고 걷고 뛰고를 반복해 교육장소로 향했습니다.

그래도 첫 시간에 가졌던 그 이스트를 넣어 부풀어 오르는 빵처럼 설레던 기분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강의 시작 30분도 안돼서 무참히, 처참히, 아주 산산조각 난 나의 보잘것없는 기대감 말입니다.


첫 시간 강사분은 멘트가 굉장히 쎘습니다.

"여러분 이 단어는 꼭 알고 계셔야 해요. 빻았다. 무슨 말인 줄 아세요?

한국 남자들은 여자 볼 때 어딜 보죠? 얼굴. 그렇죠.

20대 남자가 소개팅을 받는다. (상대방 여자) 예쁘냐?

30대 남자가 소개팅을 받는다. 예쁘냐?

40대? 예쁘냐? 한남들은 얼평을 한단 말이에요. 이걸 미러링 해준 겁니다.

야 봐봐. 얼평 하는 한남들 봐봐. 니 얼굴은 어떤데? 어디에 대고 빻은 것 같이 생긴 주제에 누구한테 얼평을 하고 그러니? 그래서 빻았다 라고 하는데 얼굴뿐만이 아니라 생각 자체가 글러 먹었다? 그럴 때 빻았다고 하는 거예요."


물론 그때 당시는 우리나라에 미투 운동이 거세게 일었을 때입니다. 강남역 살인 사건에 분노했고,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백에 그동안 말 못 했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혹은 온라인 상에서 여성의 삶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미투 운동이 내 삶을 바꿨음을 분명합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엉덩이를 만진 사람을 피하는 방법으로 내가 일을 그만두는 것이. 누구에게 알리고 문제화시키는 것보다는 그 편이 훨씬 스무스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너무 웃어서 그 사람이 날 친근하게 느낀 건가? 원인을 나 자신에게 찾기도 했습니다.


더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 엄마가 돼서 생후 50일에 무슨 일을 하겠다고 나서길 나서나.

애가 너무 어려서 안 되겠다는 면접관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맞지. 나가서 뭐 얼마나 벌겠다고 갓난쟁이를 두고 일하러 나간대니.

내가 집에서 애를 보는 게 맞지.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주변 사람들도 그것이 당연하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래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라왔고, 내 생각도 그렇게 성장했습니다.


미투는 그게 당연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동안 가해자에게 너무 관대하지 않았느냐고, 피해자에게 손가락질하지 않았느냐고.

나는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온 '아프락사스'처럼. 나는 내 나이 40에 거의 가까울 그 무렵에 내 자아가 새롭게 깨어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성인권 강사 첫 시간부터 이상반응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강의 30분 만에 처절한 고민이 시작됩니다.

'이 강의를 내가 다 듣고 있어야 하나. 나갈까. 집에 갈까'


한창 워마드와 메갈이 제3의 페미니즘 물결이라고 추앙받던 시기.

워마드와 메갈에 대한 부정적 인식 또한 거세져서 연일 신문 지상에 '논쟁'이라는 타이틀로 오르내리던 시기.

내 눈에 비친, 내 눈 앞에 서 있는 강사님은 바로 워마드의 현신과 다름없었습니다.


혐오의 표현들이 강의 시간 3시간 내내 쏟아졌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랬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듣고는 싶었던지 끝까지 자리를 지키기는 했으나 복잡한 심경은 이루 말할 데가 없었다.


강사분이 보여준 예시들은 처참했습니다.

인터넷 상에 난무하는 여성 혐오 표현들. 그것에 반하는 워마드의 미러링 표현들.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는 여성을 타깃으로 한 범죄들. 차별들.

어디 내가 겪었던 일들은 명함도 못 내밀만큼의 가학적인 사건들.

'그런데 꼭 저렇게 과격한 표현들을 써야 하나?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게 당연한 건가?'


일주일 내내 머리에 쥐가 나게 고민했습니다. 다음 강의를 들으러 가는 것이 맞는지 끊임없이 자문했습니다.

다음 주 금요일 오전. 그래도 나는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날의 강사였던 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님이 강의 중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의 워마드, 메갈 사건이 뉴스에 오르내리고, 미러링 하고 시위하고 하는 것들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분들도 계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피 흘리지 않고 얻어진 혁명이 어디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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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프러제트'의 한 장면


순간, 머릿속이 명쾌해집니다.

내가 이해하는 페미니즘에 대한 정립이 온전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맞다,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우리가 바라는 최종 결과는 온전한 성평등일 수도. 성추행, 성폭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안전한 사회일 수도, 취업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출산과 육아라는 이유만으로 일자리에서 배제되지 않는 사회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모든 여성주의가 한 방법만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비혼, 비출산을 주창하는 여성주의자. 이에는 이, 혐오에는 혐오로 돌려준다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목표는 같아도 가는 길은 다를 수 있겠다.'

혐오를 혐오로 돌려준다는 방법에는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으나 왜 그렇게까지 하게 됐는지 그 내막까지 이해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설사 페미니즘은 이런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내가 못 마땅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나만의 여성주의적 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에게는 제각각의 페미니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고로 오늘부터 탄생한다.

나만의 페미니즘.


'경단녀 페미니스트'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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