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며 사는 세상
우리 모두는 평범하지만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다.
우리들 대다수는 평범하게 태어나서, 저마다의 성향으로 자신만의 삶을 산다.
그 성향을 우리는 선택하지 못한다.
자신의 성향에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아마 불만족스러워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 생각이다.
살면서 남들과 다른 나의 성향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 느낌은 부정적일 때가 많다.
소심하다, 덤벙댄다, 차분하다, 성급하다, 등등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니기에 내 잘못도 아니고, 열등한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학교, 사회생활에서 만나게 되는 이런 통념 탓에 자연스럽게 가면을 쓰곤 한다.
자아를 숨기고자 하고, 사회성과 그 자아는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
그런 외적 성향으로 사는 것 때문에 에너지 소비가 많다.
본성은 자제하고 부족한 성향을 증폭시켜야 할 때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지칠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데 익숙해진다.
익숙해지지만, 내적 성향은 외로워진다.
내 감정의 깊이를 헤아려 주는 사람도 많지 않다.
당연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공허함은 어쩔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큰 위로가 된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나에게 완전히 공감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다르다.
다른 우리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같이 어울려 사는 것.
당신의 이야기다.
"다들 그런 거 아냐?", "나도 너랑 같아!", "다들 그렇게 살아"하면서 대수롭지 않아 한다.
자신을 전달하고 설득하는 것은 많이 힘들다.
그 결여는 자연스럽게 삶에 녹아들고, 적응하고, 익숙해진다.
더 이상 이런 것들에 개의치 않을 만큼.
이렇게 사람들의 외면은 평균적이 되어간다.
사람들은 쉽게 상처받고 그 상처는 깊다.
그러나 내가 받는 상처를 상대방은 안 받기를 신경 쓰는 사람은 드물다.
가까운 사람에게 더 상처받고, 더 많이 아파한다.
가장 친밀한 사람이 쉬운 상대가 되고 그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
상처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퍼지는 바이러스다.
상처 입은 사람은 더 강한 바이러스를 퍼트린다.
그렇게 바이러스는 퍼져나간다.
자신을 알고 자신을 사랑하듯 상대방을 대하라.
남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 세상의 모든 평범한 자아들.
그들의 색깔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상처는 줄어든다.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 나의 성향.
내 잘못도, 열등한 것도 아닌 나의 성향.
타고난 우리의 성향으로 특별한 삶을 공감하는 세상.
함께 사는 세상이다.
내 성향의 만족도는 공감지수와 비례한다.
공감하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