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숨 막히는 듯했어요 20241116
올해는 더위가 심했던 탓에 사람을 비롯하여 동식물이 힘들어했던 한 해입니다. 일찍 시작된 더위는 늦게까지도 계속되었습니다. 11월 중순인데도 조금만 걸음을 빨리해도 더위를 느낍니다. 아니 등에 땀이 배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내가 배움터를 찾아가기 위해서 주로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집에서 역까지는 20 내지는 30여 분 남짓입니다. 집을 나설 때의 옷차림으로는 다소 서늘하다는 느낌이지만 역에 도착할 때면 등과 목에 열기가 나타납니다. 옷의 단추를 풀고 앞섭을 풀어헤치는 일이 있습니다. 이런 날씨가 지속되다가는 겨울이 실종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내가 더위를 타는 만큼이나 식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로 인해 채소값이 급등하고 생필품 값 또한 많이 올랐습니다. 사과 농사가 잘 되지 않아 금사과라는 말이 돌았습니다. 품귀현상 때문입니다. 파 값은 어떻고요. 배추는 어떻고요. 평소의 예닐곱 배 아니 그 이상인 때도 있었습니다. 올해는 김장 김치를 먹을 수 있을까 염려가 됐는데 요즘은 거의 평년의 수준으로 값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가을의 기온이 도움을 주었다는 생각입니다. 모처럼 배추와 무를 듬뿍 사다가 김치를 담그고, 겉절이를 하고, 우거지 국도 끓였습니다. 아, 무를 잘게 썰어 널었습니다. 무말랭이를 할 셈입니다.
나무라고 무더위를 피해 갈 수 있겠습니까. 열대야가 지속되는 한 여름에는 나무도 힘을 잃었습니다. 아파트 화단에 심은 어린 영산홍은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말라죽었습니다. 큰 나무도 잎을 지탱하기가 버거웠습니다. 힘없이 늘어진 잎을 보며 안타깝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매일 보는 산수유나무는 작년에 비해 보잘것없는 열매를 달고 있습니다. 다닥다닥 붉음을 자랑하던 열매, 올해는 가까이 다가가서 잎 사이를 눈여겨보아야 열매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귀룽나무는 어떻고요. 지난해에는 열매가 많이 열려 집으로 돌아오는 중 입맛을 보고 작은 물병에 가득가득 담아왔습니다. 나무가 해걸이를 한다고는 하지만 올해는 입맛조차 다실 수가 없습니다.
나무 이야기가 나왔으니 요즘의 상태도 이야기해야겠습니다. 단풍이 한창입니다. 하지만 역시 예년과 비교하여 곱다는 말이 선 듯 나오지 않습니다. 부실한 잎이 물드는가 싶더니만 어느새 단풍이 되어 바닥에 내려앉습니다. 며칠 전 책을 보다가 바닥에 깔린 낙엽 위에 놓여있는 책의 그림을 보았습니다. 고운 낙엽과 잘 어울립니다. 나도 이런 화면을 얻고 싶어 밖으로 나갔습니다. 나무 밑으로 갔습니다. 낙엽이 수북이 쌓였습니다.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책을 펼쳐 았습니다.
'찰칵'
여러 장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책에서 본 그림만큼 원하는 색이 아닙니다. 나무 위를 올려봅니다. 빽빽하게 가리던 이파리가 많이 떨어져 하늘이 훤히 드러났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나뭇가지에 매달린 단풍이 싱싱하고 곱게 느껴집니다.
'저 잎들도 언젠가는 바닥으로 내려오겠지.'
눈이 가는 순간 내 머리가 나타났습니다. 나무의 정수리입니다. 휑하니 가지가 드러났습니다. 머리칼이 빠지는 순서와 별다름이 없나 봅니다. 내 모습에 관심을 갖다 보니 별 것과 다 비교를 한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무도 맨 윗부분이 더위와 추위를 빨리 느낄까요. 햇빛을 가리거나 추위를 막기 위해 쓰는 모자, 가끔은 열기를 느끼며 벗었다 쓰기를 반복할 때가 있습니다.
올해는 모자도 더위를 탔다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물속에 여러 차례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이유는 머리에 쓰고 다니다 보면 자주 땀이 차기 때문입니다. 속옷처럼 물을 자주 만나다 보니 처음과는 달리 빳빳한 성질을 잃었습니다. 모양이 좋아 같은 것을 하나 구입해야겠다고 눈여겨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습니다.
더위뿐만 아니라 추위도 동식물이 느끼는 감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처럼 더운 여름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상기후임이 틀림없습니다. 세계 곳곳은 풍수해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덥고 메마른 날씨에 산불 또한 심했습니다. 극심한 재해와 식량자원의 부족을 염려하는 기후학자들의 경고에도 많은 사람이 무관심 속에 살고 있습니다. 걱정을 하는 듯하면서도 대처는 미흡합니다.
며칠 있으면 기온이 내려간다고 합니다. 옷장을 열고 겨울옷을 들여다봅니다. 예년 같으면 벌써 꺼내야 할 옷이 옷걸이에 걸린 채 잠자고 있습니다. 아직 추위를 느끼지 못한 탓일까요?
여름은 여름다워야 하고,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는데, 한 계절의 맛은 화끈하게 보았지만 다가오는 한 계절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야 더위도 추위도 그저 무난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심정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