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고무줄이 낡았다고요. 20230215
수영 팬티가 흘러내렸습니다. 고무줄이 느슨해진 이유입니다. 하마터면 수영장에 몸만 담그고 헤엄을 치지 못할 뻔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수영을 끝내고 샤워하려고 했을 때입니다.
‘멀쩡한 팬티가 왜 이래?’
하지만 40여 년이나 나와 함께한 피부입니다. 기분에 따라 가까이하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했지만 수영 때마다 꾸준히 나와 동행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내 피부가 변하는 것처럼 수영복도 외모가 달라졌습니다. 검정이던 피부는 짙은 회색으로 탈색이 되었습니다.
수영 도구를 챙길 때 아내는 가끔 말합니다.
“그만 바꿔요, 좀 창피하지 않아요.”
“뭐가, 해진 곳 하나 없고 튼튼하구먼.”
외양은 그래도 재질이 좋아서인지 모양이 구식이라는 점만 빼면 아직도 나와 함께 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없습니다. 한때는 버리고 요즘 유행하는 것으로 바꿔볼까 했지만 그만두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끊어진 고무줄을 빼고 검정 고무줄을 끼우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청승맞게 뭐 하는 거예요. 당신이 맘에 드는 것으로 선물하면 안 될까요.”
“글쎄.”
당장이라도 나를 일으켜 세울 기세입니다.
하지만 나의 작업은 계속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만 놓아줄까 했지만, 서운한 마음이 듭니다. 언젠가는 닳고 삭아질 게 분명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잊고 지냈습니다. 고무줄을 넣고 입어보니 보니 주름이 고르지는 않지만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살 마음만 있다면 뭐 대수도 아니지만 수영복이 좋다고 ‘박태환’처럼 수영을 더 잘하는 것도 아니고 보면 정을 떼어내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라면 당연히 바꾸어 볼 생각이 들겠지만, 그는 신기록을 향해 달리고 내 경우는 건강 유지를 하는 정도로 충분합니다.
누군가는 나와 달리 폼생폼사(멋에 살고 뭐에 죽는다는 뜻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멋을 최우선 순위로 두는 태도나 생각을 속되게 이르는 말.)에 마음을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곧 죽어도 명품이야. 내가 오늘 죽어도, 뭐 교통사고 당해 죽든 강도당해 죽든 병원에 실려 가서 빨개 벗겨놔도 절대로 기죽지 않게 비싼 팬티 사 입어.”
인생 드라마로 꼽는 ‘나의 아저씨’입니다. 오늘 갑자기 사고로 죽는다면 내 낡은 팬티를 누군가 보게 되겠지. 팬티가 뭐 어때서. 그리고 이미 눈을 감아버렸는데…….
나는 오래된 것을 좋아합니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까지는 써야 합니다. 내 스마트 폰의 케이스, 내 책상과 옷가지들, 책가방, 만년필 등, 비싸지는 않지만, 집착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생필품은 물론 난방비와 전기료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관리비 고지서를 보니 이 겨울이 매섭게 춥기는 했지만, 상상외로 금액이 많아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지난해 이맘때와 비교하여 10만 원 이상이나 많습니다. 절약한다고 신경을 썼지만, 세계적인 현상이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세계 여러 나라 사람에게 근심을 안겨주었습니다. 이상 한파도 한몫했습니다.
전 국민이 난방비 폭탄이라며 아우성칩니다. 어느 비닐하우스 농가는 전기요금이 800만 원이나 고지되었다며 생업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합니다. 이맘때와 비교하여 30퍼센트 이상 올랐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나라의 에너지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에너지의 자급자족이 안 되는 우리나라는 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아내는 관리비 고지서를 보더니 말없이 집안의 난방온도를 낮추었습니다.
“너무 펑펑 썼나 봐요.”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집안에서도 옷을 두껍게 입고 있었습니다. 절약했지만 생각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나 봅니다. 전기밥솥을 치웠습니다. 취사와 보온에 전기 먹는 하마가 아닐까 하고 중얼거립니다.
에너지의 문제는 우리만의 일이 아닙니다. 전 인류의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들은 값싸고 공해가 없는 에너지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수력, 원자력, 태양광, 풍력 등을 이용한 에너지 확보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에 못지않게 에너지를 절약하는 노력도 해야 합니다. 나는 종종 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립니다.
“우리 아파트의 등을 좀 줄이면 좋겠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일부 주민들의 아우성이 대단합니다. 야경을 망친다며 아파트 하락을 걱정합니다. 예전에 정부의 시책에 호응하기 위해 대낮 같던 복도의 등을 하나 건너 소등한 일이 있습니다. 원성이 높아 몇 달 후에 원래대로 돌아갔습니다.
‘안 써도 되는 일, 절약해도 되는 일.’
문을 열어놓고 냉난방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낮에도 바깥 등을 켜놓는 곳이 있습니다. 불필요한 전기는 아껴야겠습니다. 스스로 폭탄을 만드는 일은 자제했으면 좋겠습니다. 부자 몸조심하라는 말도 있습니다. 겪어봐야 알겠지요. 사실 어려운 사람은 어려움이 더 크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