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10. 지나침과 모자람 사이 20230610

by 지금은

세상에는 이상한 일들이 많지만, 사람만큼 특별한 것이 없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한없이 선량해 보이던 그가 무서운 존재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평온할 때는 온순해 보이지만 불안감이나 갈등 상황에 부딪히면 문제가 된다.


나는 고양이나 개를 떠올린다. 멀리서 보면 평소에는 늘 평화로워 보이는 그들이 어느 순간 야수로 변하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도 타인의 요구에 의해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됨됨이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내가 어린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가끔 십여 리가 되는 삼촌 댁에 심부름을 갈 일이 있었습니다. 동네를 몇 군데 지나쳐 가야 하는데 그중 한 곳이 내 발길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갈 때나 올 때 내 또래의 아이가 나타나 길을 가로막고 시비를 겁니다. 때로는 막대기를 들거나 돌멩이를 들고 이유 없이 겁을 주기도 했습니다. 무조건 이 길로 다니지 말라고 합니다. 타 동네이고 보니 대들어 싸울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른이라도 나타나 편을 든다면 봉변당하지 않을까. 그의 위협에도 침묵하며 그가 길을 비켜 줄 때까지 서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같은 장소에 그 아이가 나타나 막대기를 휘두르며 나에게 겁을 주었습니다. 몇 발짝 떨어져 비켜주기를 기다리는데 그 동네의 어른이 나타났습니다.


“지나가는 아이들한테 또 이러는 게야.”


아이를 제지하며 말했습니다.


“얘를 겁낼 것 없다.”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으면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화풀이한다는 겁니다. 내가 힘이 두 배는 세 보이니 혼을 내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동네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이것저것 물어본 어른은 네 삼촌과 초등학교 때 친구였다며 안부를 전하라고 했습니다.


내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입니다. 그 무렵 왕따라는 말과 학교 폭력에 관한 이야기가 신문에 가끔 오르내렸습니다. 이전이라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정도가 심하지 않으니 훈계 정도로 지나갔습니다. 어쩌다 일본의 예를 들던 ‘집단 괴롭힘 즉 왕따 그리고 폭력’의 수가 점차 늘어났습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점차 학생은 물론 학부모들의 사이에서 사건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이천 년 대에 들어서면서 학교 폭력이 점차 학교와 사회의 골칫거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 반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겼습니다. 전 학년에서 한 아이로부터 괴롭힘을 받던 친구가 올해도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은근히 걱정되어 미리 침을 주었습니다. 괴롭힘을 주는 아이에게 친구와 사이좋게 지낼 것을 당부했습니다. 부모에게도 지도를 부탁했습니다. 그 후 도 그 들 사이에 몇 번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이 학기가 되고 며칠 후입니다. 학부모가 찾아왔습니다. 상대를 괴롭히던 아이의 부모입니다.


“이를 어쩌지요?”


울상이 되었습니다. 사연을 들어봤더니 괴롭힘을 주는 아이와 받는 아이의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성장의 차이입니다. 시달리던 아이의 왜소한 몸이 장마철 오이처럼 부쩍 자랐습니다. 괴롭히던 아이의 키는 그대입니다. 몇 차례 힘겨루기하는 동안 그들은 서로의 능력을 알아차렸습니다.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 학기 들어 많이 혼내주었다며 이제는 좀 봐주면 안 될까?”


“아직 멀었습니다. 일 학년 때부터 계속 시달림을 받은걸요. 다음 해까지는 혼내야 해요.”


말을 그렇게 했지만, 심성이 착한 아이는 더 이상 보복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심성이 착한 것을 알고 있는 아이는 그것을 역 이용했습니다. 당분간 괴롭힘을 받았던 그는 역전을 노렸는지 모릅니다. 뜻에 맞는 친구들을 모아 반격을 했습니다.


“안 되겠어요, 저 자식들이 저를 왕따로 만들어요.”


참으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장기자랑 시간을 활용했습니다. 일주일 후 각기 한 가지씩 친구들 앞에서 소개하도록 했습니다. 아이가 태권도 선수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발차기를 이렇게 잘하는 거야.”


의외입니다. 발이 머리 위로 깃발을 달 듯 올라갑니다. 반 친구들을 향해 아이를 마음껏 치켜세웠습니다.


“와, 봤지. 대단하다.”


방과 후 조용히 불러 세웠습니다.


“왜 이런 실력을 써먹지 않은 거야.”


“관장님이 폭력에는 절대 사용하지 말라고 하셔서요.”


조용히 말했습니다.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나도 반대라며 가끔은 나의 힘을 아이들에게 보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지나침은 늘 자기를 파괴하는 씨앗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입장이라면 늘 좋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어렵게 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넘치거나 부족함은 악덕이라고 했습니다. 중용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삶은 공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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