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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

142. 식사 20230727

by 지금은

“식사 안 하고 가십니까.”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요.”

구내식당으로 가는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안다고는 하지만 며칠 전 우리 집 앞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익힌 사람입니다. 노인회관을 드나드는지 며칠 되지 않았으니 여러 가지가 낯설 것입니다. 나의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혼자 먹는 사람들 많아요.”

이제 종강이 내일모레이니 다시 강좌가 시작되면 생각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대부분 사람은 혼자 식사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혼자 식사하면 뭔가 눈치가 보이는 듯합니다. 주시하는 사람이 없어도 왠지 멋쩍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에서 한동안 떠나지 못할 때는 퇴직을 하고부터입니다. 직장에 있을 때는 주위 동료들과 자연스레 어울려 식사했는데 막상 울타리를 벗어나 더 넓은 곳으로 나오니 함께할 익숙한 사람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게 마냥 어색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시선을 회피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쑥스러움이 남아있어 주위 사람을 의식하게 됩니다. 식사 내내 슬쩍슬쩍 눈치를 보았습니다. 나를 주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걱정도 팔자야. 걱정의 구십 퍼센트는 기우라는데.’

그러고 보니 뭐든지 처음이 중요합니다. 발을 들여놓다 보면 어느새 주변에 익숙해지게 마련입니다. 주변이 눈에 익숙해지자, 사람들을 둘러봅니다. 혼자 식사하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 아닙니다.

어느덧 혼자 식사하는 재미도 생겼습니다. 오로지 나만의 생각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식사하는 내내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느리게 먹고 싶으면 느리게 먹고 빨리 먹고 싶으면 빨리 먹으면 됩니다.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아내가 혼잣말합니다.

“에이 그렇게 까다로울 수가 있어서야.”

“뭐가요.”

내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당신 아니고 오늘 친목회.”

회원 중에 유난히 음식을 가리는 사람이 있는 모양입니다. 만날 때마다 의견이 맞지 않아 시간을 낭비한답니다. 오늘부터는 각자 점심을 먹고 찻집에서 만나기로 했다는군요. 결국 그 사람만 떨어져 식사하고 다시 모였답니다.

내가 직장에 근무할 때도 비슷한 일이 가끔 있었습니다. 메뉴를 정할 때 의견이 분분할 경우가 있습니다. 양식, 한식, 장소의 분위기 등, 서로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 있으니, 장소를 정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기도 합니다.

아내와 나의 경우도 가끔 의견이 맞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작년 가을 창덕궁에 갔을 때입니다. 장소에 이르렀을 때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입장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저기, 청국장.”

아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허름한 청국장 전문집입니다. 들여다보니 하나의 메뉴밖에 없습니다. 망설여집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분위기를 좋아하는 아내가 오늘은 달라진 태도입니다.

“오랜만에 맛있게 먹었네, 다음에 또 와야겠어요.”

큰 소리만큼이나 맛있는 표정입니다. 나는 그게 아닌데, 청국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퀴퀴한 냄새를 싫어합니다. 아내는 분위기를 따지면서도 식성은 옛사람입니다. 나의 식성에 비해 특별히 가리는 음식이 없습니다. 하지만 의견이 맞지 않아 시장 골목을 두어 번 누비는 경우도 있습니다. 몇십 년을 한 집에 산 사람도 그런데 여러 사람이 모이다 보면 당연하다 싶을 때도 있습니다.

장마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더위가 머리를 들었습니다. 갑자기 뜨거워진 공기는 이내 주변을 달궜습니다. 밖에 나가면 좀 시원할까 하는 마음에 해가 지자, 공원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생각 같지 않습니다. 방 안의 공기보다 후끈하다는 느낌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다 아파트 현관에서 마주쳤습니다.

“치킨 어때.”

“삼계탕이 낫지 않겠어요.”

의외의 말입니다. 아들의 입장을 생각해서 한 말인데 혹시 아들은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들은 치킨을 좋아합니다. 나는 삼계탕을 좋아합니다. 아내는 둘 다 좋아합니다.

“그럼, 그러지 뭐.”

식사의 즐거움은 생각 나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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