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237. 남산 위에 저 소나무 20231016

by 지금은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애국가 참 많이 불렀습니다. 일절만큼은 아니지만 이 절도 많이 불렀습니다.

나는 시골에 살다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서울로 이사를 했습니다. 남산 위에 소나무가 철갑을 두른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 민둥산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소나무가 많았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추측일 뿐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국가에도 나오는 것을 보면 거짓은 아니겠지요.

남산뿐이겠습니까. 그 시절에는 헐벗은 산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내가 살던 산골도 마찬가지입니다. 잔 나무들만 있어 봄이면 진달래꽃이 온 산을 물들였습니다. 푸른 강산을 만들겠다고 정부에서 산림녹화 운동을 벌였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고사리 같은 내 손도 필요했습니다. 오전 수업을 마치면 호미, 괭이, 삽, 넓은 그릇을 가지고 선생님을 따라 산으로 갔습니다. 회초리 같은 묘목을 정성스레 심었습니다.

남산이라고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중심부에 있는 산이니 그냥 둘 리가 있습니까. 학교는 남산 가까이 있었습니다. 벌레가 출몰하는 시기가 되면 나무를 보호하겠다고 단체로 송충이 잡이를 갔습니다.

남산에는 비밀 아닌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신문에 보도된 일이 있기는 하지만 정부의 통제에 의해 한 번의 기사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 외국의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정부에서는 벌거벗은 남산을 보여주기가 싫었나 봅니다. 어느 날 산에 올라가는데 잘게 자른 짚에 시퍼런 페인트가 묻어있는 게 보입니다. 짚은 산 중턱을 중심으로 꼭대기까지 골고루 뿌려져 있습니다. 비행기에서 첫눈에 들어오는 푸른 산을 보여 주고 싶었나 봅니다.

다음 해에 산에 갔는데 톱과 낫을 든 사람들이 산속에 모여 있습니다. 산을 가꾸자고 하는데 웬일인가 하는 마음에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소나무를 가꾸기 위해 잡목을 잘라내기로 했답니다. 남산에는 왜 소나무만 자라야 할까요. 애국가 가사에 있어서, 아니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라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만두는 게 어떠냐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 마음이 통할 리 없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산림의 건강을 위해서는 한 종류의 나무만 있기보다는 다른 나무와 함께 어울리는 것이 병충해에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이 났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나무에는 송진이 있어 불에 잘 타고 번지는 속도가 빠르다고 합니다. 산림녹화의 성공으로 남산이 푸르러지고 다른 산들도 숲을 이루었습니다. 우리의 경제가 발전한 것만큼 푸름이 강산을 덮었습니다. 이제는 남산이 시민들의 쉼터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남산에는 또 다른 풍경이 있습니다. 정상에 자물쇠가 무더기로 철제 난간에 매달려 있습니다. 일일이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한두 개가 아니고 수만 개, 아니 수십만 개가 아닐까, 합니다.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거나, 서로의 약속 원하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 많은 자물쇠 중에 열쇠는 보이지 않습니다.

‘열쇠를 어떻게 했을까요.’

혼자라면 가져가도 되겠지만 둘이나 셋만의 약속이라면 누가 열쇠를 관리할까 궁금했습니다.

이 궁금증은 식물에 관한 책을 읽다가 풀렸습니다. 엉뚱하게도 열쇠와 관련이 없는 책 속에 숨어있었습니다. 식물을 연구하고 조사하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동료들과 남산의 식물 표본을 조사하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무와 풀을 살피던 중 반짝이는 열쇠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이리저리 살피는데 옆의 연구원도 비슷한 열쇠를 집어 들었습니다. 발을 옮길수록 열쇠는 많아졌습니다. 처음에 하나둘 집어 든 게 모이다 보니 무겁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입장입니다. 버릴 수도 가지고 밖으로 나오기도 뭣해서 망설이고 있는데 웬 낯선 사람이 눈에 띄었습니다. 인도를 제외하고는 숲 속은 통제되는 곳입니다. 살펴보니 자루를 어깨에 메고 있습니다. 모인 열쇠를 자루에 담아 고물상으로 가져갈 계획이랍니다. 연구원들이 모은 열쇠가 그의 자루에 옮겨졌습니다.

매달린 자물쇠가 많아 난간이 무너졌다는 방송 기사가 있었습니다. 시에서는 위험을 예상하여 일정량이 되면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했답니다. 이미 옮겨진 자물쇠가 산꼭대기의 마당에 크리스마스트리의 모양을 갖추고 있습니다. 햇빛을 받아 각양각색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소원이 이에 맞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좋은 생각이 엉뚱하게도 산림의 파괴범이 되는 순간입니다. 많은 열쇠는 나무의 생장에 걸림돌이 됩니다. 열쇠는 따로 마련된 함에 넣어 보관하면 어떨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를 비롯하여 모든 동식물이 건강하게 자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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