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 가로수 20231016
은행나무가 가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잎이 노란색으로 물들고 숨어있던 열매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름내 푸른 잎 속에 감춰져 있던 열매가 잎과 함께 노랗게 물들었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한두 알 바닥에 보이던 열매가 요즘은 무더기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어느새 사람들의 발길에 밟혀 껍데기가 벗겨지고 알맹이가 깨져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은행나무는 여름내 인도의 가장자리에서 사람들을 위해 햇빛 가리개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가을을 맞으면 이제는 할 일을 마친 듯 잎과 열매가 노랗게 익어갑니다.
은행나무가 많아진 이유는 서울올림픽을 열면서 도시 미관을 생각하다 보니 노란 단풍의 아름다운 은행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도시의 가을은 여인의 옷차림에서 알 수 있다지만 은행잎도 무시 못 할 존재입니다. 은행잎이 물들어 간다는 것은 가을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도시에서 가을의 존재를 알리는 것에는 이만한 것도 없습니다. 삭막한 도시에서 가을을 알리는 전령사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부터인가 사람들에 의해 외면을 받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원인은 열매에서 나는 냄새입니다. 옛날에는 귀한 약재로 쓰였는데 흔하다 보니 천대를 받고 있습니다.
한동안 길가의 은행 열매를 따거나 줍는 일로 인해 사회의 문제가 된 일도 있습니다. 요즘 공원의 도토리를 줍는 일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무분별한 열매의 채취로 ‘경범죄 처벌 또는 벌금’의 현수막이 산이나 공원의 곳곳에 걸려 있습니다. 인도에 떨어져 있는 은행이 수량도 많고 냄새가 나니 더 이상 은행을 주워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길을 걷다가 은행을 보면 발을 조심합니다. 혹시 밟을까 염려됩니다. 냄새 때문입니다. 이를 대중이 있는 곳이나 집으로 가져가기는 싫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만 급한 발걸음이라서 그럴까, 종종 은행이 깨지고 뭉그러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민원의 대상이 되다 보니 정부에서는 가로수를 다른 나무로 교체하거나 열매가 열릴 때쯤이면 미리 손을 보기도 합니다. 아예 처음부터 나무를 심을 때 암수를 구별하여 수나무만 심기도 합니다.
하지만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은행나무 가로수는 점차 숫자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신 악취가 없고 꽃이 예쁜 이팝나무, 회화나무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고장은 도시의 조성이 늦기는 했지만 인도를 따라 이팝나무가 줄을 지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가로수가 있었을까요.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단종 때 의정부 대신의 가로수에 대한 논의가 있습니다.
‘큰길 양편에 소나무 잣나무 배나무 밤나무 느티나무 버드나무 등, 나무를 많이 심고 벌목을 금지할 것’
가로수는 심는 이유가 뚜렷합니다. 예전에는 이정표 기능이 컸습니다. 그 흔적이 나무 이름에도 남았다. 5리마다 한 그루씩 심은 나무를 오리나무라 했고, 20리마다 심는 나무는 스무나무였다가 지금은 시무나무로 바뀌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때는 성장이 빠른 미루나무와 수양버들을 집중적으로 심었습니다. 광복 후에는 오염의 문제로 플라타너스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넓은 잎에 잔털이 있어 매연과 먼지를 빨아들이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큰 나무들은 가지와 잎이 교통신호와 간판을 가린다는 면에서 서서히 자리를 잃었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나무들은 해마다 작은 가지들이 무참히 잘려 나가는 아픔을 견디어야 합니다.
가로수는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세상은 모든 게 변화를 거듭하는 것처럼 가로수도 변화를 거듭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식물학자들은 품종을 개량하여 인간에 유익하게 하려고 합니다. 같은 품종이라 하더라도 개량을 거듭하는 가운데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냅니다.
사과의 예를 들어보면 그 품종이 다양합니다. 처음에는 별 볼 일 없던 작고 맛이 없는 재래종이 크고 사람의 입을 끌어당기는 것으로 진보되었습니다. 세계의 사과 품종이 많지만,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사과의 종류만 해도 그 수가 많습니다.
‘부사, 홍옥, 아오리, 화홍, 감흥, 영광, 히메카미, 시나노 스위트.’
이들은 색상, 맛, 과육이 각각 다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어느 고장에는 감나무가 가로수 역할을 하는 곳이 있고 또 다른 곳은 사과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고장은 이팝나무가 대표적인 가로수입니다. 봄이면 쌀알을 닮은 흰 꽃이 길 양편을 수놓습니다.
전에 강릉에 갔던 일이 있었습니다. 시내의 길을 목백일홍꽃이 뒤덮고 있습니다. 색다른 느낌에 눈이 저절로 갔습니다. 전국이 모두 똑같은 가로수를 가꾸기보다는 지역마다 특색 있는 식물을 가로수로 정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