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265. 당신을 응원합니다. 20231115

by 지금은

단풍이 한잎 두잎 윤기를 잃어갑니다. 스산한 바람이 내 목덜미로 훑고 지나갑니다. 어느새 겨울의 입구에 서 있습니다. 달력이 두 장 남았습니다. 한 장도 날짜의 반을 삼켰습니다. 시월의 마지막 밤을 이미 뜬눈으로 새웠는데 시름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소복이 쌓여가는 낙엽, 갈무리를 마친 논둑은 텅 공간을 안고 된서리에 흰머리를 드러냈습니다. 몸이 낙엽처럼 오그라듭니다.

뭐야, 밭둑에 있는 저 모과나무는 어느새 노랗게 익은 열매를 하늘에 내보입니다. 말할 줄 모르는 동식물도 제 할 일을 다 하고 겨울을 맞이하는데, 서글픈 생각에 애꿎은 나무를 걷어찼습니다. ‘철썩’ 모과 하나가 발밑에 떨어졌습니다.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봅니다. 다행입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일부러 떨어뜨리려고 한 것은 아닌데 젖먹이 아기의 내두르는 손길만큼에도 반응했습니다.

기분이 안 좋습니다. 이룬 것이 없고 되는 일도 없다는 생각이 마음을 더욱 어둡게 합니다. 가을은 우수의 계절이라고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닙니다. 괜히 쓸쓸하고 슬픈 생각이 든 게 여러 번입니다. 남들은 하고자 하는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그동안 쌓아놓은 것도 많은 것 같습니다. 나 홀로 비참합니다. 가진 것 없고 이룩한 것 없습니다. 재산도 명예도 보잘것없습니다. 이 해에는 서글픔과 쓸쓸함이 지난해의 것에 더 보태졌습니다. 나이만 한 살 더 늘게 되었습니다. 나와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의 소식을 간간이 듣습니다.

철식이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도 사장 잘 만나 사장을 하고, 명수는 고등학교 졸업하고도 국회의원이 되었다지, 밭 한 뙈기 없던 칠성이는 고향 근처에서 수만 평의 부농이 되었다더군. 초등학교 때 나보다 못했던 코흘리개들이 나름대로 행복한 생활을 합니다.

동창회에 나가면 너도나도 서로 밥값을 내겠다고 카드를 꺼냅니다. 이십여 년 전입니다. 친구가 말했습니다.

“카드 자랑하냐, 현금 내놔 봐.”

한 친구가 안주머니에서 두툼한 다발을 꺼냈습니다. 자동차 부품회사 사장입니다. 모두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한동안 동네가 들썩였습니다.

그 후 몇 해 전 추석을 맞아 성묘하러 갈 때입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친구가 슬며시 다가와 손을 잡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동안 소식이 없었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했더니만 낯빛이 흐렸습니다. 대답입니다. 차비가 없으니 대신 내달라고 합니다. 늘 세상이 제 편인 줄 알았답니다. 세상은 변화합니다. 사업을 하는 친구 중에는 IMF 때의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인해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때뿐만 아닙니다. 겉은 화려해도 그만큼 마음 한 구석이 아픈 경우도 있습니다. 부농을 자랑하는 친구는 손가락을 잃었습니다. 농기계를 다루다 사고를 당했답니다. 화려함 뒤에는 그늘도 있게 마련입니다. 무성한 나무 밑은 어김없이 큰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삶을 다 하기 전까지는 누구나 늘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의 다스림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위축되고 긴장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내 안에 나를 찾아야 합니다. 나를 올바르게 찾아갈 때 남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어디를 가나 있는지 없는지, 왔는지 갔는지 모르는 사람, 주변의 눈치를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말이 떠오릅니다. 그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 하면서도 인용해 봅니다.

“나는 보통 사람입니다.”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하는 인물이 보통 사람이라고?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선거에 쓰였던 슬로건인 "보통 사람의 위대한 시대"라는 말이 유명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처럼 완전 독재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노태우 역시 군부 이미지가 강했고 실제로 그렇게 될 뻔했습니다. 대선 당시도 민주화 열기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는데 대선 포스터에 걸렸던 이 문구 하나가 판을 바꿔 놓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물론 노태우 선거 캠프에서는 "보통 사람"이라는 슬로건의 이미지가 너무 약한 것 아니냐 했지만, 본인은 국민들에게 친근하고 편안하게 보일 수 있다며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죽음을 앞두었을 때입니다. 그의 언행을 보면 남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티 없는 보통 사람이 마음에 듭니다. 정주영 회장의 어록 중, ‘해봤어.’하는 말도 좋아합니다. 하고자 하는 일을 하다 보면 보통 사람이 되고 또 심혈을 기울이면 보통의 경지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꾸준함이 무기입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것처럼 사람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시냇물이 모여 바다를 이룹니다. 긴 안목을 가지고 발걸음을 옮겨야겠습니다. 잘된 사람치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경우는 없습니다. 용기를 잃지 않고 부지런히 앞으로 나가면 좋겠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이는 곧 남도 사랑하는 길입니다. 남도 나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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