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278. 김장철이 맞는군. 20231124

by 지금은

입동이 지나고 일주일 후의 우리 고장에도 첫눈이 내렸습니다. 잠깐이지만 펑펑 내리는 눈의 한겨울이라도 된 양 사색에 잠겼습니다.

‘우리는 아직 김장하지 않았는데.’

텔레비전 속에서는 김장하는 사람들의 손놀림이 분주합니다. 주변의 경관이 보이는데 산촌입니다.

내가 살던 산촌의 풍경이 살아납니다. 겨울 준비는 간단합니다. 양식과 김장과 땔나무가 풍족하다면 겨울나기는 끝입니다. 하지만 준비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가을 추수를 끝내고 보면 늘 곡식이 부족합니다. 땔나무도 그리 넉넉하지 않습니다. 일을 할 능력은 있어도 벌거숭이산에는 땔나무가 흔하지 않습니다. 솔잎이며 가랑잎까지 긁어다 불을 지피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김장한다고요. 가을걷이하다 보니 김장이 늦었습니다. 날을 잡았는데 공교롭게도 눈발이 날립니다. 늦출 수가 없습니다. 눈을 맞으며 어제저녁 소금물에 절인 배추를 씻어 건져냅니다. 300백 포기입니다. 지금 같으면 ‘음식점을 하시나요.’하고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옛날이니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날처럼 각종 채소가 흔하지 않은 겨울이고 보면 이 김장 김치가 겨울을 나는데 효자입니다.

김장하는 날은 신이 납니다. 어린 마음에 양념하는 곳으로 배추를 날라주고 잔심부름하며 칭찬을 받는 일은 즐겁습니다. 기온이 갑자기 내려간 통에 물기가 손에 닿자 빨갛게 되었습니다.

“조그만 게 일손을 돕겠다고, 기특하기도 하지.”

할머니가 손에 더운 입김을 불어넣고는 앞치마로 내 두 손을 감싸 쥐었습니다. 아궁이 앞에 앉아 김칫소를 넣고 계셨으니, 앞치마가 솜이불보다 더 따스했습니다. 배추 양념을 싼 고갱이를 입에 넣어주셨습니다. 매콤하지만 씹다 보면 점차 고소해집니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었습니다. 식구들이 모두 나섰지만 일은 저녁이 되어서야 끝났습니다. 지금이야 김장 김치를 하는 게 두렵고, 어렵게 생각하지만, 예전에는 2·300 포기를 하는 건 당연시했습니다.

어제 복지관에서 노인 건강에 관한 특강이 있었습니다. 김치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비췄습니다. 건강식이랍니다. 외국에서도 알려져 우리의 김장 문화를 배우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여자들이 많다 보니 강의가 끝나자 자연스레 김장에 관해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우선 첫마디는 ‘김장했어요, 안 했어요.’가 질문입니다. 대부분 사람은 아직 하지 않았다고 하고 사서 먹을 거라고도 합니다. 몇몇 분은 김장해서 아들네, 딸네를 비롯하여 가까운 사람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나와 가까이 지내는 분이 물었습니다. 아직이라고 하자 점점 추워지는데 서둘러야 할 게 아니냐고 합니다. 우리 집은 김장을 하지 않은 지 오래입니다. 결혼 후 얼마 동안은 배추를 사서 절이고 속을 넣었는데 절임 배추가 시중에 나오면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아파트 생활을 하다면서 배추절임이 번잡스럽습니다. 사서 사용해 보니 일손을 줄여주고 간편합니다. 어느새 그마저도 생략했습니다. 편리함에 익숙해진 결과입니다. 필요에 따라 조금씩 사 먹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추억으로 남겨졌지만, 고민 하나는 사라졌습니다.

김장하다 보면 항상 맛이 똑같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해는 맛있는 김치를 만들었는데 또 다른 해에는 그렇지 못해 먹는 내내 좋은 기분이 아닐 때도 있었습니다. 어느 해입니다. 김치를 담글 때 황석어를 넣으면 좋다는 분의 말에 김칫소에 넣었습니다.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 산촌에는 생선이 귀했습니다. 자연 비린 맛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 해의 김치 담그기가 실패입니다. 산촌의 맛이 아닙니다. 먹는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버리고 다시 했습니다.

사 먹는 김치는 늘 맛이 같습니다. 겉절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냉장고에 넣고 바로바로 먹으면 되고, 익은 김치를 좋아하는 경우에는 밖에 놓아 익기를 기다리면 됩니다. 푹 익은 묵은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큰 독에서 묵은지를 꺼냅니다. 3년이 된 것이라는데 살아있는 듯 싱싱한 모습입니다. 단풍보다 더 곱게 물이 들었습니다. 줄기를 손으로 쭉 찢어 상대의 입에 넣어줍니다. 입맛을 다시는 표정이 밝습니다. 침이 가득 고입니다. 해묵은 김장 김치는 시중에도 나와 있고 이를 이용한 음식물도 선을 보입니다. 잠시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김장하는 날 수육과 김장 김치의 조화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김장을 끝낸 사람들이 야외의 식탁에 모여 막걸리를 곁들여 쌈을 입에 넣습니다.

“여보, 빨리 와 봐요.”

아내도 입맛을 다시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김장 김치를 담그면 어떻겠냐고 은근슬쩍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방법을 잊은 지 오래고, 제맛을 낼 것 같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함께 일어섰습니다. 겉절이를 먹는 셈 치고 한 포기만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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