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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Nov 23. 2024

2021 그날

63. 신나게 놀자 20210606

신나게 놀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놀려고 하니 놀아봤어야지요. 놀아본 사람이 논다고 하는데 맞는 말입니다. 어쩌다 보니 인생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퍽 잘된 일도 없으면서 제대로 놀지도 못했습니다.


신나게 놀라고 하니 반가운 일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됩니다. 시대를 탓할 수야 없지만 고난을 이기기 위해 고심하다 보니 기회를 잃었습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신나게 논 사람이 있습니다. 잘 놀아서 잘된 사람도 있지만 신나게 놀다 보니 잘 풀리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 사람 아직 모자도 벗지 못한 도토리입니다.


나는 음주·가무에 능하지 못합니다.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노래를 부르는 일입니다. 노래를 맛깔스럽게 해 본 일이 없습니다. 음치에다 박치입니다. 손짓, 발짓, 몸짓도 하며 물 흐르듯 리듬을 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한마디로 흥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뭐 그리 고민이 많았는지 늘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철학자도 아니면서 별 볼 일 없는 일에 골몰했는지 모릅니다. 정의의 사도라도 된 것처럼 국가의 안위를 염려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들여다보는 데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결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혼자 노는 데 익숙합니다. 혼자 있는 게 외롭다고요. 쓸쓸하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여럿이 어울려 놀다 보면 오히려 쓸쓸해질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면 점점 노는 것이 시들해집니다.


나는 가만히 있기보다는 늘 꼼지락거리기 좋아합니다. 그러기에 이것저것 참견을 많이 해봤습니다. 노래를 잘 못하는 대신 오카리나, 하모니카, 리코더, 기타 등 연주에 마음을 돌린 때가 있습니다. 재주가 부족해서일까요. 리코더는 그럭저럭 다루지만 내세울 일은 아닙니다. 결국 음악 감상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많이 듣다 보니 제목은 기억나지 않아도 곡이 연주되고 있으면 ‘음’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진행을 예측하기도 합니다.


다음으로는 미술입니다. 서예, 수채화, 공예, 조각 등 두루 기웃거렸습니다.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의 작품을 보고 ‘저거다’ 했습니다. 몇 년을 공들였습니다.


“잘 접으시네요.”


“예, 못 접는 것 빼고 다 접습니다.”


종이 접기입니다. 자그마치 큰 사과 상자를 쌓아 올려 천정에 닿을 정도로 두 줄은 접었습니다. 아내의 성화에 버릴 수는 없고 보는 아이마다 나눠주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꼬박 두 해 동안이나 가방에 챙겨서 다니며 나누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이 갖고 놀라고 내가 아는 유치원에도 몇 상자 보냈습니다.


운동은 뭐 그렇습니다. 잘하지는 못해도 무슨 운동이든 그냥 어울릴 수 있습니다. 탁구, 배드민턴, 포켓볼, 축구, 핸드볼 등 상대편의 기분을 맞춰줄 정도입니다.


잘 놀았다고요. 아닙니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공부로 여겼습니다. 한 번 하면 포기할 때까지는 열심히 했습니다. 방법을 말하고 규칙을 이야기합니다. 상대편은 당연히 재미가 없습니다.


“대충 하지 뭘 그래.”


맞습니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재미가 있으려면 때로는 대충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싸울 일이 아니면 그렇습니다. 나는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이런 경우 어물쩍 넘어갔다고 해서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닙니다. 다툼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나는 잘 노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어렵지도 않습니다. 책 한 권이면 하루가 지나갑니다. 독서를 공부라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 속의 인물들과 내용을 이야기하다 보면 시곗바늘이 몇 차례씩이나 엇갈리는 줄을 모릅니다. 걷는 재미도 있습니다. 보는 재미도 있지만 순간순간 나 자신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나에게서 나를 멀어지게 하는 것도 하나입니다. 번민을 사라지게 하는 재주 말입니다. 이어지는 것이 여행입니다. 그동안은 내 주변을 완전히 창고에 가두고 자물쇠를 채울 수 있습니다.


코로나 참 괘씸합니다. 핑계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아니었으면 벌써 두서너 차례 긴 여행을 했습니다. 새로운 곳에 시선을 두고, 새로운 것을 듣고, 새로운 맛에 취했을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을 해봐도 놀아본 사람이 논다는 말이 실감 납니다. 가끔 몰입의 중요함을 느낍니다. 말같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잘 놀기는 해야겠는데 기와집만 짓다 마는 꼴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신나는 일은 없어도 혼자 놀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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