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즐겨 듣는 감상곡이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가곡입니다. 이곡 저곡 듣다 보니 모르는 사이에 음악가 슈베르트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보다는 그의 곡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편이 옳습니다. 세레나데, 밤과 꿈, 송어……. 듣다 보면 어느새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 스피커를 켰습니다. 평소보다 늦잠을 잤습니다. 일요일이라서 그럴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출근을 하지 않은지 어느새 20여 년이 가까워옵니다. 매일 일요일 같은 감각을 지니고 살면서도 오늘이 일요일이지 하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12월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게으름을 피운다고 해야 할까요? 일찍 일어나는 버릇이 그만 사라져 버린 느낌입니다. 시골의 생활처럼 해가 뜨면 낮이요, 어두워지면 밤이라는 인식이 머리를 찾아오는지 모릅니다. 올해 동지 전후로 그 현상이 또렷해졌습니다. 거실로 나왔더니 식탁에는 어느새 내 몫의 음식이 차려져 있습니다. 아내의 취침과 기상시간이 늘 일정합니다. 알람을 설정해 놓기도 하지만 습관적으로 그 시간이면 몸을 일으킵니다.
내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까요. 방문을 열었을 때는 거실에서 슈베르트의 ‘송어’가 잔잔하게 거실에 퍼지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아내는 나 못지않게 이 곡을 사랑합니다. 관현악, 기타 연주가 있어도 피아노곡을 애호합니다. 아내와 나는 감상의 방법에 다소 차이가 납니다. 나는 이곡 저곡 번갈아가며 듣는 것을 좋아하지만 아내는 한 곡을 열 번 이상은 계속 들어야 성에 찬다고 합니다. 가만두어도 되풀이되게 할 방법이 없겠느냐고 합니다.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모르기도 하지만 방법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글쎄 하는 말로 대신했습니다.
슈베르트의 곡이 끝났습니다. 하모니카 연주곡을 찾았습니다. 요즘은 하모니카에 마음이 쏠렸습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트럼펫 등의 악기들이 있지만 아코디언과 하모니카의 음색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변덕쟁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이 여러 가지의 악기 중 종종 선호도가 바뀝니다. 언제는 피아노곡이 좋아 계속 듣다가 바이올린 첼로 등으로 옮겨갑니다.
며칠 전부터 하모니카를 손에 들었습니다. 10여 년 전에 입에 대보고 처음입니다. 문득 하모니카 소리를 듣고 다시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감상만 할 게 아니라 내 마음의 곡을 습득해 보고 싶었습니다. 한동안 하모니카 감상에 빠져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12곡을 이어 들었습니다. 어느새 손에는 커피 잔이 들려있습니다. 옆에는 아내가 박자에 맞춰 허밍을 합니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보랏빛 엽서’가 흘러나옵니다. 나도 좋아하는 곡입니다. 곡이 끝나갈 무렵입니다.
“새로운 감상곡을 신청합니다.”
동요입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내 눈과 손가락이 동요를 찾아갑니다. ‘낮에 나온 반달’을 시작으로 여러 곡이 이어집니다.
초등학교 시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시골의 작은 학교에는 수업 시작과 함께 온종일 노래가 울려 퍼집니다. 풍금이 한 대밖에 없습니다. 일 학년부터 육 학년까지 돌아가며 사용했습니다. 육 학년에는 풍금을 옮겨주는 당번이 있었습니다. 일 학년 교실로, 이학년 교실로, 삼 학년 교실로……. 1학년이 끝날 때쯤이면 어느새 6학년이 부르는 노래도 어렴풋이 익히게 됩니다. 동요만 가지고 따진다면 1학년이라도 6학년 언니들과 견주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눈을 감았습니다. 70여 년이 지났는데도 가사가 쏙쏙 입으로 흘러나오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나는 천재, 만재, 억재, 나뿐만이 아닙니다. 아내도 그렇군요. 최근의 기억보다 옛 기억이 떠 또렷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느새 합창을 하고 있습니다. 동요를 듣고 있다 보면 노래에 따라 옛 추억이 도막도막 이어집니다. ‘귀뚜라미가 우는 달밤’을 듣는 중입니다. 나는 시골의 뒷간에 앉아있습니다. 허술한 벽을 뚫고 보름달이 나를 들여다봅니다. 귀뚜라미가 내 손이 닿지 않을 만큼 떨어진 곳에서 울고 있습니다. 내 주위에는 노란 물이 들었습니다. 짝사랑하던 친구는 내 생각하고 있을까. 말을 붙여볼 사이도 없이 전학을 왔던 그녀는 한 달이 되기 전에 다른 학교로 떠났습니다. 이유는 모릅니다. 예쁘다는 생각뿐입니다. ‘귀뚜라미가 우는 달밤’의 노래를 즐겨 불렀습니다.
오늘 밤에는 공원으로 발길을 옮겨야 합니다. 눈이 내린다는군요. 비라도 좋습니다. 바람이면 어떻습니까. 자연의 악기를 찾아갑니다. 가랑잎이 신발을 가릴 정도로 쌓였습니다. 마른 잎을 밟으면 ‘사각 사각’ 소리가 납니다.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울림이 온몸에 전해집니다. 눈이 내립니다. ‘스륵스륵’ 귀를 찾아옵니다. 나는 자연의 소리를 좋아합니다. 가랑잎에 떨어지는 소리는 내 마음속에 동요(童謠)입니다. 가랑잎은 겨울밤에 홀로 우는 악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