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이면 아랫목이 그리워집니다. 아파트에 살면서 무슨 아랫목 타령을 하겠느냐고 하겠지만 어린 시절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요즘은 시골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구들 대신 보일러를 이용하는 가정이 많아졌습니다. 아궁이, 구들, 굴뚝은 난방의 삼총사입니다. 사람의 소화기관처럼 불길은 자연스레 방바닥을 통과합니다.
아침 서울의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내려갔습니다. 보름 전쯤에는 영하 17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물 묻은 손이 문고리에 달라붙었다는 말이 돌 정도로 대단한 추위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 추위라면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곳이 있습니다. 요즘 유럽 곳곳에서 홍수와 한파 등 이상기후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북유럽은 25년 만에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쳤으며 홍수로 마을이 물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이상기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스웨덴 일부 지역은 지난 3일 영하 43.6도까지 내려가 사람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맹추위로 도로가 통제됐고 휴교령이 내려졌습니다. 기록적인 추위로 4000여 가구가 정전 피해를 겪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북유럽이 매서운 추위에 갇혔다고 해야겠습니다.
이맘때쯤이면 할머니와 집안 식구들의 말이 떠오릅니다. 아침 잠자리입니다.
“더 자, 밖이 추워.”
나는 어느새 할머니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새벽녘 할머니가 밖으로 나가시며 나를 밀어 자신의 자리에 눕혔습니다. 제일 먼저 일어나시는 분은 할머니 아니면 어머니입니다. 저녁에 덥혀놓은 구들을 다시 덥힙니다. 밤새 서서히 식어서 어느새 윗목은 미지근함을 지나 이불속이 차가움으로 변했습니다. 군불을 때고 계시는군요.
겨울은 나에게 좋은 계절입니다. 어리다는 이유로 마냥 게으름을 피워도 됩니다. 특권입니다. 형이나 삼촌은 나처럼 잠자리에서 미적미적하다가는 혼이 납니다.
“빨리 나와 마당의 눈 치우지 못하고 뭐 해.”
‘드그덕 드그덕’ 고무래 미는 소리, 삼태기에 눈을 퍼 담는 삽질 소리도 들립니다. 문밖의 모습을 상상하면서도 어느새 잠이 들었습니다. 늦은 아침이 차려졌나 봅니다. 할머니가 방문을 열고 엉덩이를 살그머니 두드립니다. 밥 먹을 시간이니 일어나라는 신호입니다. 할머니는 내가 배고프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계실까. 한껏 기지개를 켜고 일어섰습니다. 이불을 개고 밥상이 들어왔습니다.
‘눈곱은 떼고 밥을 먹어야지’ 형의 말에 할머니가 대신 대답을 하십니다. 밥 먹고 세수를 해도 늦지 않으니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가마솥의 물은 그때까지도 식지 않을 것입니다. 한수 더 뜨십니다. 추우면 밥 먹고 더 자도 된다며 이불을 가리킵립니다. 하지만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 조금 있으면 동네 아이들이 동구 밖의 큰 논으로 썰매를 타러 가자고 외치는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나는 지금 아랫목도 윗목도 없는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난방의 변천사만큼이나 나의 주거 생활도 변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 나무를 때던 시골을 떠나 서울로 왔습니다. 아궁이, 구들, 굴뚝이 있는 재래식 난방이지만 아궁이가 변했습니다. 연탄아궁이입니다. 좁은 방인데도 아랫목만 따스합니다. 없는 살림에 연탄을 아끼다 보니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겨울철이면 아랫목에는 늘 이불이나 담요가 깔려있습니다. 시골 화로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해야 할까요.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의 발을 녹이는 장소입니다. 늦게 퇴근해 오는 식구를 생각해서 따뜻한 밥주발을 보관하는 장소입니다. 온장고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나는 한때 연탄아궁이가 있는 아파트에 산 적이 있습니다. 청계천의 삼일 아파트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신기한 일입니다. 아파트에서 연탄을 땔 수가 있다니, 가스의 위험이 있었습니다. 우리뿐만 아닙니다. 연탄을 때는 가정은 늘 마음에 두는 걱정입니다. 해마다 일부 가정에서 가스중독으로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점차 난방의 기술이 발전하며 보일러가 등장했습니다. 바닥에 호스를 깔고 뜨거운 물을 순환시킵니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구들을 이용하는 가정이 있어 나무나 연탄을 난방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과거 속으로 떠날 것입니다. 아랫목 윗목이 사라졌습니다. 극히 일부이기는 해도 서양의 난방을 흉내 내서 벽난로를 설치한 가정도 있습니다. 이는 대개 멋을 내기 위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난방 방법은 효율적인 면에서 세계의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밤입니다. 건너편 빌딩의 어느 집에 불이 났다는 신고가 있었습니다. 소방관이 도착하고 보니 대형 텔레비전에서 벽난로의 장작불이 타오르는 장면이 비치고 있습니다. 내가 보아도 착각할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화하는 난방의 방법이 또 다른 기록으로 남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늦잠을 잤습니다. 기온이 내려가다 보니 꿈속에서도 아랫목 생각이 났나 봅니다. 이불속의 온기를 빼앗기기 싫은 현상이 아닐까 합니다. 겨울의 동심은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