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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 실내화 20240113

by 지금은

실내화를 샀습니다. 한동안 신던 신발이 낡아 바닥이 벗겨지고 퇴색되었습니다. 아끼고 아낀다면 더 신어도 되겠지만 발을 내려다볼 때마다 왠지 초라한 느낌이 듭니다. 마음속에 투정이 꿈틀거립니다.


“보온 실내화를 하나 사면 안 될까?”


사고 싶으면 그냥 구입해도 되겠지만 아내의 의향을 떠봅니다. 아내는 내 속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몇 해 전부터 겨울만 되면 발이 시리다는 말을 자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식구가 전 주에 외식하고 오는 길에 다이소 매장에 간 일이 있습니다. 나무 주걱을 하나 샀습니다. 들린 김에 이 물건 저 물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물건의 종류가 많다 보니 필요한 게 있으면 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구를 나오려는데 실내화가 눈에 뜨입니다. 포근해 보입니다. 겨울철에 신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잠시 이것저것 구경하며 만져보기도 했습니다. 아들이 마음에 들면 하나 사라고 했지만, 고개를 저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살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내에서 소파나 의자에 앉아있으면 손발이 저립니다.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방 안의 공기는 늘 25도를 유지하지만, 바닥은 차갑습니다. 발이 시리다는 느낌에 온도를 올리면 덥다는 느낌입니다. 가끔 고향 집 생각이 납니다. 위풍이 세기는 했어도 겨울철이면 바닥이 따뜻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지하보도를 이용하여 역전에 이르고 횡단보도를 두 곳 건너서 다이소 매장에 도착했습니다. 입구를 들어서자, 우리를 반기기라도 하듯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전번에 본 모습 그대로입니다. 하나씩 골라봅니다. 어쩌지요? 마음에 드는 것은 치수가 맞지 않습니다. 치수가 맞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마침내 하나씩 들었습니다. 발을 넣고 모양을 살핍니다. 포근해서 좋기는 한데 외양이 썩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눈치도 그렇습니다.


“우리 집과 반대편에 있는 건너편 은행 옆 매장에 가볼까요?”


함께 길을 걷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늘이 파랗습니다. 오늘은 포근합니다. 집을 나설 때는 봄이 돌아오는 느낌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가을 같다고 했습니다. 며칠 전 강추위에 단련된 마음 때문일까? 오늘은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분명 내 몸을 스쳐 가는 바람이 목덜미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겨울철이면 노인이 신경 써야 할 게 있다고 전에 친구가 친절하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모자, 장갑, 목도리입니다. 지금 나는 삼박자를 갖추고 있습니다. 게다가 마스크까지 했습니다. 팔을 앞뒤로 흔듭니다. 앞서거나 뒤서거나 느린 걸음의 젊은이 얼굴에 바람기가 스쳐 가는 느낌이 드러납니다. 머리가 날리고 얼굴에 찬 기운이 돕니다. 젊음이 좋아 보입니다. 재잘재잘 참새 못지않습니다. 즐거운 일이 있나 봅니다. 까르르 웃음을 토해내기도 합니다.


다이소 매장에 도착했습니다. 역시 입구에서 실내화가 우리를 맞이합니다. 벽에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그게 그거군요. 쌍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뭐 좀 다를까 했는데 변화가 없습니다. 오히려 앞서 본 신발 종류 중 없는 게 있습니다. 하지만 손에 들었다가 놓은 게 있습니다. 나는 같은 것을 집었고 아내는 모양이 좀 다른 것을 골랐습니다. 발을 다시 꼬여봅니다. 올겨울은 발이 호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들 것은 취향을 물어보고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곧 상표를 떼어버리고 발을 감췄습니다. 포근함이 전해집니다. 아내는 낡은 실내화를 버리겠다며 쓰레기를 모으는 상자에 넣었습니다. 신발장으로 갑니다. 더 정리할 게 있을까요. 버리는 김에 내 낡은 운동화를 버릴지도 모릅니다. 여름용인데 일 년은 더 신을 것 같아 모셔두었습니다. 잠시 후 겨울 슬리퍼를 신고 거실에 나타났습니다. 눈에 익습니다.


“언제 그게 있었지?”


생각해 보니 이사 오기 전 살던 집에서 신던 것입니다. 그동안 신발장 맨 위에 놓고 찾을 생각을 못 했습니다. 사지 않아도 될 것을 찾아 헤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내는 전에 것이 마음에 드는지 새것을 한옆으로 밀어놓았습니다. 이왕 샀으니 먼저 신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만 번갈아 신겠다고 합니다. 땀이 찰 수도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아들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추측이 맞았습니다. 회사에서 돌아오자, 신발을 내밀었습니다.


“신어 봐.”


아들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습니다. 하루 종일 회사에 있고 집에서는 잠자기 전 몇 시간인데 필요하지 않다며 신던 실내화를 고집합니다. 밀고 당기다가 아내가 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그저 둘의 모습만 지켜봅니다. 나도 슬그머니 실내화를 벗어 보입니다. 엄마의 마음과 아들의 마음이 겹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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