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 떡보 떡순이 20240123
점심때 떡을 먹었습니다. 11시경 물을 먹으려고 주방에 갔을 때 조리대 위에는 분명 쌀 그릇이 있었습니다. 현미와 백미, 콩이 섞여 물에 담겼습니다. 점심은 분명 잡곡밥입니다. 책을 보고 있는데 식사하라는 작은 외침이 들립니다.
“웬 떡.”
아내가 인터넷으로 떡을 주문했다고 합니다. 송편입니다. 접시에는 고구마도 함께 있습니다. 내가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양배추와 상추도 있습니다. 달걀부침도 있습니다. 점심밥을 지을까 하는 중 떡이 도착했답니다. 떡을 좋아해서 밥은 저녁에 먹기로 하고 우선 떡을 쪘다고 말합니다.
“점심은 점을 찍는 것으로 마쳐야 하는데 너무 푸짐한 게 아닌가요.”
가끔 농담 삼아하는 말입니다. 점심을 먹으면서 풍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커피까지 한 잔 곁들이니 외식 부럽지 않습니다. 오늘 떡은 더구나 맛이 다양합니다. 송편의 소에 깨, 동부, 팥이 들어있습니다. 고구마에 달걀, 채소까지 다양한 맛을 음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식구는 떡을 종종 먹습니다. 집안의 식성은 대개 어머니, 아내의 솜씨를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아내와 오래 살다 보니 어머니의 맛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아내의 맛에 길들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생각지 않은 일이 있었습니다. 설날에 송편을 먹고 추석날에는 떡국을 먹었습니다. 추석 다음 날 평생학습관에 갔습니다. 수강생 중 한 사람이 송편을 싸와서 나누어 먹게 되었습니다. 오늘이 아니었으면 추석 때 송편을 굶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더니만 옆 사람이 정말이냐고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면 추석날 뭘 먹었느냐기에 흰 떡국을 먹었다고 했더니 믿을만한 농담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습니다. 정말 떡국을 먹었다고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에 나올 만한 일이라고 합니다. 떡은 떡인걸 뭐, 이 시대에 꼭 추석에 송편을, 설날에 떡국을 먹어야 하는 이유가 있느냐고 했습니다. 하나의 습관이고 고유의 풍습일 뿐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추석날 아내에게 떡국을 내놓은 이유를 묻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내가 감기로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마침 가래떡이 있기에 몸을 따스하게 해 주려고 끓였답니다. 더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풍습을 지키는 것보다는 우선 건강이 중요합니다. 설날 아침에 송편을 먹은 이유는 아내가 갑자기 먹고 싶은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에는 늘 떡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가래떡, 송편, 흰무리, 시루떡, 인절미, 증편……. 이들 중 한 가지는 냉장고에 있습니다. 이유는 아내가 떡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떡이 바뀔 때면 아내는 가끔 말합니다. 어려서부터 떡을 좋아하다 보니 놀림을 받기도 했답니다. 집안 식구나 다른 사람이 이다음에 시집을 갈 때는 떡 방앗간 총각을 신랑으로 맞이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에 아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왜 힘들게 방앗간 집에 시집을 가요. 부잣집에 시집가서 떡을 사 먹으면 되지.”
사람들은 웃음보를 터뜨렸습니다.
나는 아내의 생각처럼 부자가 아닙니다. 처음 만나 살림을 차렸을 때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내가 떡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떡을 자주 먹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집도 있고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생활을 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떡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입맛을 따라간 게 분명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어릴 때 아내와 나는 음식 궁합이 맞지 않았습니다. 나는 주로 밥을 먹었습니다. 떡이나 고구마를 먹으면 생목이 올랐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국수를 먹어도 그렇습니다. 내 식사는 오로지 밥이었습니다. 뱃속이 불편했던 나는 소식을 해야 했고 색다른 음식을 먹으면 탈이 잘 났습니다. 아내는 밥보다 떡과 빵을 비롯한 다른 음식을 좋아합니다. 나의 식성은 어느새 아내의 입맛을 따라갑니다. 이제는 하나 더 좋아진 게 있습니다. 아내가 푸성귀를 좋아하지 않는 것에 비해 이런 것이 식탁에 꼭 올라야 마음이 편합니다.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양배추는 꼭 있어야 하고, 양파와 상추도 곁들이면 좋습니다. 음식을 가리지 않는 이유는 마음과는 달리 말썽을 부리던 뱃속이 어느덧 편해진 까닭입니다.
오늘 밤에는 책을 읽다 말고 아내가 잠든 사이 슬그머니 주방으로 향했습니다. 뱃속이 출출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냄비를 열었습니다. 송편 하나와 고구마 한쪽을 집어 듭니다. 목젖이 어느새 아래위로 움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