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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7. 애가 되어간다 20242029

by 지금은

오랜만에 아내와 처가에 갔습니다. 명절 전후에 찾아봐야 하는데 처형이 함께 가자는 말에 미루었습니다. 소식이 없어 전화했더니만 감기에 걸렸다는데 가라앉은 목소리입니다. 처가라고는 하지만 장모님이 안 계십니다. 그러려니 합니다. 살아 계신다면 120세 가까이 되니 생전의 모습만 기억할 뿐입니다. 처남이 사는 아파트에 이르러 바깥에서 벨을 눌렀습니다. 반응이 없습니다. 방문하겠다는 기별도 없었으니 혹시 외출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번 더 벨을 누르고 반응이 없으면 되돌아서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마침 한 사람이 뒤에 나타났습니다. 문 여는 기기가 작동했나. 출입문이 스륵 열립니다. 앞서서 엘리베이터에 올랐습니다. 현관 벨을 눌러보고 반응이 없으면 집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발을 내딛는 순간 대문이 활짝 열린 것을 보았습니다. 햇살에 반사되어 화면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차림새를 보니 외출할 생각이었나 봅니다. 엊그제 처남댁을 전철역 입구에서 보았습니다. 하지만 못 본 척했습니다. 걸음걸이가 바빠 보였습니다. 급한 볼일이라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는 척했다가는 바쁜 사람 마음만 초조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나중에 이야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자리에 앉자 무슨 일로 외출하려고 하느냐고 물었더니만 병원에 가야 한답니다. 작은딸이 왔다 갔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감기에 걸린 것 같아 코로나 검사를 했는데 양성반응이 나와 집에도 못 들어가고 호텔에 묵기로 했답니다. 꼬마 아이가 집에 있어 옮길까 걱정이 되는 모양입니다. 딸은 부모가 걱정되어 코로나 검사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걱정되는지 마스크를 찾습니다. 우리까지 병이 옮을까 걱정합니다.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얼굴을 가렸습니다. 졸지에 네 명이 환자처럼 보였습니다.


우리가 오랜만에 갔으니, 병원에 가야겠다는 말은 못 하고 잠시 우물쭈물합니다.


“아 맞아, 딸이 준 코로나 간이검사기가 있지.”


처남댁이 진단키트를 꺼냈습니다. 손놀림을 보니 어색하기에 짝이 없습니다. 의심이 갈 때마다 딸이 검사를 해주었답니다. 실제 해보지 않으면 서투를 수밖에 없습니다. 더디기는 했지만, 순서에 맞게 진행했습니다. 빨간 줄이 나와야 한다는 데 왜 보이지 않는 거냐며 미심쩍어합니다. 5분을 기다려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며 15분을 말합니다. 슬며시 옆으로 다가가 키트를 살폈습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음성이군요.”


“어디, 어디요.”


빨간 띠를 가리켰습니다. 그러고 보니 다른 곳을 보고 있었습니다. 위치 확인이 되지 않았던 겁니다. 휴,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이어 처남도 검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잠시 후 옥신각신합니다. 면봉을 코 안쪽 깊이 넣어 문질러야 한다며 처남이 잡고 있던 면봉을 빼앗아 자신이 해주겠답니다. 처남은 면봉이 너무 깊이 들어가면 거북하고 다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처남댁은 콧구멍 언저리만 문지르면 제대로 결과가 나오겠느냐고 말합니다. 아이를 달래 듯하며 채취를 마쳤습니다. 결과를 기다리는데 좀 전처럼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콧구멍을 잘못 쑤신 거라고 합니다. 다시 검사를 해야겠다고 하기에 확인했습니다. 빨간 띠가 하나입니다. 음성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어디냐며 확인합니다. 노안이라 잘 보이지 않는 게 분명합니다. 내 돋보기로 비쳐 보였습니다.


큰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동생이 감염되었다는 말에 부모가 걱정되었던 모양입니다. 더구나 계획이 틀어질까 염려가 되었을 게 분명합니다. 휴일 연휴를 맞아 강원도에 놀러 가기로 했답니다. 친정 부모와 함께 가기로 예약을 해두었는데 만일 코로나로 인해 가지 못하게 될까 봐 마음이 쓰인 게 분명합니다. 아침에 전화가 와서 딸 내외만 갔다 오라고 했는데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딸은 못 가게 되면 예약을 취소해야 하는데 어쩌나 고민했답니다. 처남의 말입니다. 이제는 나이를 먹다 보니, 놀러 다니는 게 귀찮다고 합니다. 처남댁의 생각은 다릅니다. 원래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세월 앞에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이제는 반반이라 누가 여행을 가자고 하면 우물쭈물하게 된다고 합니다.


“가자고 할 때 부지런히 다녀요. 머지않아 가자는 말이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우리는 언제 여행을 다녀왔는지 모릅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나들이는 자연스레 뒷전으로 물러났습니다. 다시 여행을 해볼까? 하고 여행사를 알아봅니다. 먼 곳은 힘이 들 것 같고 가까운 곳은 재미가 없을 것만 같고, 뜸을 들입니다. 이럴 때는 어린아이처럼 누군가의 보호를 받고 싶습니다. 마음만큼은 아직 젊음이 넘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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