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에게 한 잔의 커피였다

퍽처럼 버려진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

by 글이 된 커피

커피 한 잔의 시작은 늘 향으로 온다.

곱게 갈린 원두가루에 물이 닿고, 그 향은 잔 속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잔 속에 모든 것을 건네고 나면, 남는 건 하나.


‘퍽(puck)’


에스프레소 추출 후 포터필터 안에 남는, 압축된 젖은 커피 찌꺼기,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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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이 된 원두가루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쓰레기봉투로 향하고,

누군가의 아침을 깨운 한 잔의 커피는 하루의 시작이 되어 고요히 스며든다.


손님에게 커피를 건네고, 당연하다는 듯 퍽을 버리던 손길이 멈춰진다.

커피를 오래 다루다 보면 이 장면은 너무 익숙해 더 이상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향미는 컵에 담아 누군가에게 건네고,
퍽은 미련 없이 버리는 일.


무심히 퍽을 버리던 그날,

나는 문득 손을 멈췄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그것을 보며,

원두의 마지막이,

삶의 어떤 장면, 누군가의 마지막, 어떤 관계가 겹쳐 보였다.


퍽.jpg


젊음과 시간을 기꺼이 쏟아붓고도
홀연히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 일.

모든 걸 내어주고도 외면당했던 관계.
전부를 다 줬지만 끝내 함께하지 못한 감정들.

누구나 한 번쯤, 퍽처럼 버려졌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포터필터 안, 퍽을 바라보며 아쉬움이 맴도는 날,
‘향이 조금은 남아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코를 가까이 가져가게 된다.

어렴풋이 남아 있는 향.
코끝을 스치는 따뜻한 온기.

잔향에,
그 미세한 감각에,
마음이 또 한 번 흔들린다.
마치 쉽게 비워지지 않는 사람에 대한 마음처럼.


하지만 이제는, 그 퍽을 다르게 바라보려 한다.

향이 다 빠졌다면,
그건 끝난 것이다.

향미를 다 건넸다는 건
그 존재가 자신의 몫을 다 했다는 뜻.

더 이상 붙잡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다.


나는 이제 안다.

그 잔향은 다시 나를 데려다줄 수 없다는 것을.


남아 있는 것은 ‘기회’가 아니라, 기억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놓아주기 위해 존재한다.

아름다웠던 순간조차도
제 자리를 떠났다면 흘려보내야 한다.

나를 위해서 미련 없이 돌아설 줄 아는 마음.

그건 냉정이 아니라 존중이다.
그 순간이, 그 사람이, 그리고 나였던 그 시간을
제대로 사랑했기에 보내주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건네주는 커피처럼
그 시간, 그 사람에게 전했던 나의 향과 온기는
충분히 스며들었고, 결국 기억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한때 누군가의 따뜻한 한 잔 커피였다.
그리고 때로는 퍽처럼 버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세상을 살며 누구나 겪는 일.
내 삶의 여정 속,
점 하나를 찍는 소중한 과정이다.


다음 향미를 위해 우리는 기꺼이 비워야 하고,
담담히 돌아설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내 삶을 위한 결심이자,
나를 지키는 단단한 방식이다.


돌아서야만 비로소 보이는 새로운 향.
그리고 또 다른 한 잔의 시작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다시 내 삶에 스며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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