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 동아리 동기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우리 학번은 학교 다닐 때 몇 없는 콩가루 학번이었는데, 막상 졸업을 하고 나니 자주 모였다. 그날도 서로 해외여행 다녀온 선물을 주고받으며, 토요일 점심 명동에서 식사를 했었더랬다. 아마 스물아홉 4월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그는 항공사에서 3교대로 근무하고 있었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바로 김포공항에서 명동으로 오기로 했는데, 그러면 모임의 막바지에 잠깐 얼굴 보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오기로 한 시간이 지나도 그가 오지 않았다. 회사에 긴급 상황이 생겨 제 때 퇴근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미 친구들이 있기로 한 일정은 끝나 다들 뿔뿔이 흩어졌는데, 원래 근무보다 두 어시간 더 근무한 그는 힘든데 이대로 집에 가고 싶지 않다고 단톡방에서 울고 있었다.
그래서 불렀다. 광화문으로. 그의 집은 인천이지만, 김포공항에서 광화문에 왔다가 다시 인천으로 가야 하는 코스이지만, 업무 스트레스로 콧바람 쐴 것이 필요하다는 그는 단숨에 광화문으로 왔다.
친구들은 일정이 있어 다 떠나고, 할 일 없는 나만 남아 있었다. 연애도 안 하는 내 일정은 모임이 전부였기에.... 그가 올 때까지 광화문 서점에서 책 구경을 하고 있었더랬다.
오후 4시쯤인가, 그가 도착은 했지만 딱히 할 것은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미 점심을 잘 먹어 배불렀는데, 그는 점심도 못 먹고 일하느라 배가 고프다고 했다. 그래서 찾아보았다. 두 사람이 들어가서 한 사람만 먹어도 이상하지 않은 메뉴를 찾아보자. 멀지 않은 곳에 있어야 하고, 맛있어야 한다. 열심히 인터넷 서핑을 한 결과 근처에 종*분식을 찾았다. (지금이야 광화문에서 근무하여 맛집을 빠삭하게 알고 있지만, 그때는 강남 인근에서 근무하던 때라 광화문 가게에 대해서 무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찾은 가게는 적절했던 것 같다.)
떡볶이에 튀김, 김밥. 딱이네! 우리는 바로 그 가게로 갔다. 허름한 외관, 오후 3~4시쯤의 애매한 시간. 부담 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튀김범벅(튀김에 떡볶이 소스를 버무려 준 것)을 시켰다. 주로 그가 먹을 것이었지만, 또 눈 앞에 먹을 것을 두고 어찌 한 입도 먹지 않을쏘냐. 자연스럽게 2명의 수저와 물컵을 세팅하였다.
그리고 왠지 모를 파문은 그 순간에 찾아왔다. 5월 말, 떡볶이 집에서 상상한 키스는 그 이전에 어쩌면 마음속에 이런 파문이 일은 적이 있어서였을지도 모른다. 몇 년이 지난 지금 회상할 때도 그때를 생각하면 또 나름 뭉클해진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닐 일이지만, 어떻게 수저와 물컵을 세팅하는 그 찰나에 무슨 파문이 일 수 있지? 싶지만.
내가 수저를 꺼내고 있을 때, 그는 정수기에 가서 물을 받아왔다. 목이 말랐던 나는 물을 받자마자 한 모금 마셨는데.......... 따뜻하다. 따뜻한 물이었다. 보통의 생수통 정수기에서 물을 받으면 찬 물, 뜨거운 물 이렇게 극단적으로 구분되는데 이 물은 적절히 그 온도를 섞어놓은 따뜻한 물이었다.
어, 물이 따뜻하네?
응, 너 찬 물 못 마시잖아
그 순간 차오르는 감정. 흑흑. 우리 아빠도 기억 못 하는 것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기억하고 만나자마자 배려해주다니. 정말 감동이었다. 요 근래 아무한테도 이런 배려는 받지 못하였는데 오랜 친구의 의미가 이런 건가 싶었다.
나는 배탈이 워낙 자주 나고 찬 것에 민감하여, 찬 물을 잘 못 마신다. 집에서 마시는 물도 냉장고에 들어간 적이 없다. 항상 상온 이상의 물을 마시고, 찬물을 마실 땐 입에서 데우고 천천히 마시는 편이다. 이 부분을 방심하고 그냥 넘겼다간 과민성 대장이 찾아오는 결과를 초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 항상 조심하는데, 사실 나의 이런 부분을 기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냥 쟤는 좀 자주 아픈 애야 라고만 생각하지, 그런 결과로 찬 물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까지 기억하지 않는다. 일 년에 몇 번 보는 우리 아빠도 워낙 가끔 보다 보니 그런 걸 잘 신경 쓰지 않는다.(아빠에게 몇 번 서운했던 기억...) 엄마가 기억하는지는 그것조차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친절이었지만 나에게는 감동이었다. 그렇다고 어라 얘가 나한테 관심 있나? 까지 진도를 나간 것은 아니었다. 그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자상하니까. 그렇다고 나 지금 얘 때문에 떨려도 아직은 아니었다. 그냥 잠시 설렜을 뿐이다. 누군가 나에 대해 잘 알고 그걸 배려해줬다는 점에서. 이 때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을 뿐이다. 그가 나에게 친절한만큼 나도 이 정도만큼은 잘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생각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 뒤돌아서 생각해보니, 그에 대해 어느 순간에 첫 파문이 일었을까 생각해보니, 거슬러 올라가 이 순간이 떠올랐다. 그냥 마음에 감동의 돌이 던져진 순간. 그때는 그 파문이 나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랐지만 그 나비효과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