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별 별자리의 차이를 이해하기
'16년 12월. 우리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겨울 휴가로 사이판에 갔다. 겨울에 따뜻한 곳에 가서 노는 걸 꼭 해보고 싶었기에 태평양 한 가운데의 섬으로 2박 4일의 여행을 떠났다. 한 겨울에 반 팔 입고 오리온 자리를 편하게 보는 사치를 누리러.
해가 지고 우리는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사서 자살 절벽으로 올라갔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저녁끼니가 될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여행을 다니면서 대체로 잠도 잘 못자고, 먹는 것도 잘 못먹었다. 이게 다 별 때문이다. 별을 보기위해 시간과 일정을 맞추다보면, 다른 것은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우리는 부부가 같이 이걸 좋아하기에 갈등이 없지만, 만약 한 사람만 좋아하는 취미라면 참 고달프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두운 밤, 고요한 길 끝에는 아무도 없었다. 낮에는 유명한 관광 포인트이지만, 밤에는 아무 것도 아닌 곳이기에. 오히려 예전에 일본군이 자살했었던 곳이라고 하니 그 원혼이 있을까 싶어 섬뜩하다. 어둠이 내려 앉은 이 곳은 딱히 누군가 올 곳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왔다. 주변의 방해 없이, 산꼭대기에서 별을 보기 위해.
올라오자마자 동쪽에 오리온 자리가 뜨는 게 보인다. 그 아래 혼자 밝게 빛나는 시리우스도. 캬, 겨울철 별자리를 이렇게 즐기는 구나. 뚜껑이 열리는 차 안에 누워서, 얇은 원피스 하나 입고 따뜻하게. 항상 오리온 자리는 오들오들 떨면서 혹은 밤을 지새우고 졸린 눈을 비비며 봤기에 이 상황이 매우 낯설고, 신난다.
오리온 자리는 대표적인 겨울철 별자리다. 겨울 초저녁에 동쪽에서 떠서, 밤 새 서쪽으로 지는 것을 볼 수 있기에 그렇다. 계절별 별자리는 이렇게 붙여졌다. 겨울 밤 새 내내 볼 수 있으면 겨울철 별자리, 여름 밤 내내 볼 수 있으면 여름철 별자리다. 그렇다고 겨울철 별자리를 겨울에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구는 계속 돌기 때문에.
하룻밤, 밤을 꼴딱 새우면, 봄, 여름, 가을, 겨울 별자리를 다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봄철 초저녁에 동쪽 하늘에는 목동자리와 처녀자리가 뜬다. 그리고 이 봄철 별자리가 남쪽을 지날 때쯤에는 뒤이어 동쪽에서 여름철 별자리인 백조자리와 거문고자리, 독수리자리가 뜬다.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남쪽을 지나 서쪽에서 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별들도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지구가 그렇게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그리하여 이제 봄철 별자리는 서쪽으로 가고, 여름철 별자리는 남쪽으로 갈 때, 동쪽에서는 이어서 가을철 별자리인 페가수스자리 등이 떠오르며, 이내 서쪽 너머로 봄철 별자리가 질 때쯤에는 동쪽에서 겨울철 별자리인 오리온자리, 쌍둥이자리 등이 떠오른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매일 밤, 별들은 우리 하늘에 나타나고, 사라진다. 너무도 밝은 해가 사라져있는 동안에만 우리 눈에 보일 뿐.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겨울철 별자리인 오리온자리를 보려면, 한 여름에는 밤을 새운 새벽녘이거나, 겨울이어야 한다. 입김이 나오고 코 끝이 시리는 바람이 불어올 때쯤 초저녁 동쪽 하늘에 보이는 오리온자리는 마치 겨울이 시작한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 같다. 그런 겨울의 상징인 오리온자리를, 겨울의 별자리를 따뜻한 환경에서 볼 수 있다니. 사이판, 꽤나 매력적인걸!
이어서 겨울 은하수가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은하수는 여름에만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단지 은하수 중심부가 여름철 별자리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여름에 더 오래 수월하게 볼 수 있을 뿐이다. 은하수는 별들의 띠와 같기 때문에, 끊임 없이 이어져 있다. 그리하여 겨울에 하루 종일 볼 수 있는, 겨울철 별자리 근처를 지나가는 은하수 부분을 겨울 은하수라고 부른다. 계절별로 별자리를 붙이듯이, 은하수도 대충 잘 보이는 시즌에 맞춰 여름 은하수, 겨울 은하수로 일컬을 뿐이다. 겨울 은하수는 은하수 중심부 만큼 별이 많지는 않아 화려하지는 않지만, 카시오페이아 근처로 이어지며, 꽤나 어두운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매력적인 관측 대상이다. 겨울 은하수가 잘 보이는 곳에서는 근처에 있는 안드로메다 은하도 눈으로 잘 보인다.
게다가 여기는 태평양 바다 한 가운데라, 꽤나 습하다.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에서 별을 보던 것과 느낌이 아주 달랐다. 일단 공기가 수분을 가득 머금고 있어 별빛도 그 길을 거쳐오느라 퉁퉁 불었다. 아타카마에서는 선명한 별빛을 직진으로 쬐였다면, 이곳의 별빛은 오는 길에 퍼져서 흩어져버린 것 같았다. 별들이 뽀샵을 한 것처럼 살짝 뿌옇고, 더 커졌다. 덕분에 잘 보이는 별들은 더 크게, 아주 크게 보여서 별자리를 구분하기가 쉬웠다.
C는 사이판이 세 번째다. 14년 2월에 혼자, 14년 10월에 가족과 같이, 16년 12월에 나와 함께 왔다. 처음에 사이판에 와서 별을 볼 때만 해도 정말 세상이 암흑 같았다고 했다. 주변은 어둡고, 빛나는 것이라고는 하늘에 별 밖에 없었다고. 14년 10월에 C가 어머니와 함께 만세 절벽으로 별을 보러 갈 때만 해도, 너무 어두운 곳으로 간다며 어머님께서 무서워 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2년 만에, 우리는 만세 절벽이 너무 밝아 더 높이 있고 어두운 자살 절벽 꼭대기로 왔다. 만세 & 자살 절벽의 남쪽에 사이판의 시내, 가라판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이 계속 발전하고 있어 도시가 커져 어둠의 영역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만세 절벽에서 남쪽을 보면 도시의 불빛이 느껴져 별이 잘 보이지 않았다. 도시가 발전하기는 해야겠는데.. 점점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줄어들고 있다는게 안타까웠다.
당시에도 가라판 시내는 지어진 건물보다, 공사중인 건물이 더 많았는데 4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제 더 이상 자살 절벽에서 이러한 별들을 못 느낄지도 모른다. 따뜻한 곳에서 여유롭게 별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는데.. 도시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별들은 또 어디로 가야할까. 괜한 아쉬움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