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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리 Nov 01. 2020

600년 세월을 비추는 별빛

시간의 의미


서울은 참 매력적인 곳이다. 특히 사대문 안쪽은 더욱 그렇다. 과거의 역사와 현대의 최첨단이 어우러져 있다. 혹자는 일관성 없이 섞여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매일 광화문으로 출근을 하며 광화문 광장을 지날 때면 언제나 '멋지다'고 생각한다. 


북쪽으로는 병풍같이 둘러있는 북악산과 그 아래 경복궁, 그 대문인 광화문. 그리고 그 앞에 과거에는 육조거리였을 곳에 세워진 현대적 빌딩들, 그 가운데를 남북으로 잇는 광장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 개념을 잊곤 한다. 출근 길만 아니었어도 넋 놓고 바라보았을 광경들. 매일 아침 외국인들이 단체로 광화문 광장에 와서 이 모든 것들을 즐기며 사진을 찍는 모습만 보아도 참 좋았더랬다. 내가 멀리 여행을 가서 그 곳을 즐기듯이, 이 외국인들도 그렇게 멀리와서 즐기는 곳이 지금 내가 일상을 보내는 곳이라니! 비록 지금 코로나 때문에 광장은 황량해졌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그런 뭉클함을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더랬다. 


C는 서울을 누비며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는 피사체를 중심으로 한 별 사진을 찍는다. 결혼 전부터 종종 해오다가 결혼 후에는 본격적인 프로젝트로 진행 중이다. 현대적인 서울도 좋지만 역사가 함께하는 서울은 정말 매력적인 대상이다. 그렇게 한동안 C는 광화문, 북촌, 종로 일대를 다니면서 길바닥 생활을 하였다. 


도시 야경도 같이 사진에 담아야 하기에 주로 저녁-밤 시간에 사진을 찍으러 다녔는데, 이때는 사람들도 활동을 하는 시간대였다. 그때 그는 길거리에서 허기를 달래고, 사진을 찍었다. 웃긴건 그때마다 나는 퇴근 후에 가서 그의 허기를 달래줄 음식을 사다 나르거나, 그가 화장실을 다녀올 동안 카메라를 지키고 있거나 하는 보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가는 도시 한복판에서 우리는 우리끼리의 쇼를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어딘가 길바닥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을 보신다면, C 일지도... ⓒ과거 사진첩



그렇게 광화문을 주인공으로 사진을 찍고 있을 때였다. 바로 앞은 대로변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몇 초마다 화려하게 변하는 전광판이 눈 앞에 있는데, 그 속에서 이 사진의 주인공인 광화문과 해태는 600여년의 역사의 시간 동안 이 자리에 있으면서 세월이 변하는 광경을 어떤 마음으로 지켜봤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는 그 날 이 세월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 앞의 해태는 정말 별의 별 것을 다 봤을 것이라면서, 오랜 시간의 조선 시대를 지나 일제 강점기의 굴욕을 거쳐, 이렇게 급변하는 현대를 지켜본다면 어떤 격세지감이 들까하는 생각과 함께. 그러면서 조선 시대에는 이곳에서 별이 얼마나 잘 보였을까 하는 얘기도 하였다. 지금 우리가 보는 이 별들은 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일텐데. 어쩌면 우주의 시간 속에서 600년은 또 찰나이지 않을까 하며, 고작 100년도 안되는 인생을 아웅다웅 살다 가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덧없는지까지 대화가 이어졌다. 


별을 보다 보면, 우주를 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저 무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간은 먼지, 티끌만도 못한 존재일텐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고민이 무슨 소용인가. 학창 시절에는 그런 해탈과 함께 공부를 했고, 사회에 나와서는 그런 생각과 함께 머리를 비웠다. 내가 시험 기간이면 우주 사진을 책상 앞에 붙여 놓고 공부했다는 말에 C는 한껏 웃었다. 보통 그러면 오히려 공부를 안 하게 되지 않느냐 라고 물었다. 나는 반대로 내가 공부를 해서 무슨 소용인가하는 불안한 생각은 없어지고, 그렇게 티끌만도 못한 존재지만 태어나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나름의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험기간에는 공부에 충실했다고 대답했다.  



참 밝다. 옛날에는 이렇게 주변이 밝지 않았을 텐데, 별은 더 잘보였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 밝음을 이겨내고 어떻게든 카메라에 맺히는 별빛이, 우리 눈에 보이는 별빛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아무리 도시가 발달한다고 해도 정말 별 하나 안 보일 일은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의 시간이 지나야 여기에서 이렇게 보이는 별이 달라질까. 그 전에 인류가 멸망하거나 지구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정말이지 생각이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 있다는게 신기하다.


그렇게 C는 다양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공모전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제5회 고궁사진 공모전에서 '경복궁의 밤하늘'을 제목으로 우수상 수상) 이 또한 과거에서 이어져 온 현대의 기록이 되겠지. 2016년부터 찍기 시작한 이 사진들이, 나중에 세월이 지나 시간이 흐른 뒤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궁금하다. 지금의 이 도시 모습을 나중에 늙은 우리가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광화문 바로 앞 길바닥에서 찍은 광화문과 해태의 모습 ⓒ과거 사진첩
고궁사진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경복궁의 밤하늘' 600년 전과 지금, 많은 것이 다르겠지 ⓒ과거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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