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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Grace Apr 30. 2024

흉터를 드러내는 삶

서로가 서로의 흉터를 바라볼 때.

흉터를 드러내는 삶.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나의 병들은 나의 역린이나 마찬가지이다. 누군가 억지로 들추게 된다면 그 누군가와 더 이상 인연을 맺지 않을 정도로 예민하며, 우연히라도 누군가가 알게 된다면 수 일 이상을 노심초사하며 다른 이들에게 드러나지 않을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기도 한다.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는 이 전 글에서 너무 자세히 이야기해서 설명을 조금 줄이고자 한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것들로 힘들었던 누군가가 있다면 아마 이 역린을 조금은 이해하지 않을까 싶다.


가장 깊고 어두웠던 그 사 월의 날들이 조금은 지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고, 전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신뢰’라는 것이 조금씩 생기게 되면서, 그리고 나를 괴롭혔던 병들로부터 조금씩 나아지다가 결국 모든 약을 먹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이 흉터를, 역린을 조금씩 드러내었다.


흉터라는 것은 신기하다. 흉터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흉터는 궤양, 상해, 경색 등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기관의 조직 결손이 육아 조직의 형성을 거쳐 최종적으로 교원 섬유와 결합 조직을 대체하는 것으로 복구된 상태이다.] - 출처 - 한국 위키피디아.


흉터는 상처이다. 그리고 흉터는 손상되었고, 어쩌면 떨어져 나간 흔적이다. 다만 상처 직후와 흉터는 조금 다르다. 상처가 났을 때, 피가 흐를 때, 소독약을 발라 본 적이 다들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상당히 따갑다. 상처가 조금 더 크면, 공기만 통해도 아프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상처가 낫고, 딱지가 지고, 딱지가 떨어지고, 심하게 다친 부분에 새 살이 돋아 나 ‘흉터’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 그때부터는 대부분 아프지 않다. 상처가 생겼던 흔적이지만 그 부분은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다. 내가 건드려도, 누군가 실수로 건드려도 보통의 피부를 건드리는 것과 거의 같은 느낌이다. 어쩌면 무던해진다는 표현으로 이 흉터를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조금씩 이 상처를 드러내는 삶이 반복되며 도리어 나는 내가 먼저 나의 이 흉터들을 나누게 되었다. 단순히 동정을 구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지금 단순히 얼마나 힘든지만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나는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신뢰하는 이 사람들에게 솔직해지고 싶었다. 더 이야기하고 싶었다. 더 이상 이 사람들을 만날 때 가면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 역린은 어느샌가부터 역린, 반대로 난 비늘이 아닌 그저 평범한 비늘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떠날까 조금은 걱정했으나,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함께 울었던 그 사람들은 지금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 되었다. 거의 매일 함께하며,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책을 읽고, 함께 기도하기도 한다. 신뢰는 더더욱 두터워진다.


나의 외로움이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었던 것처럼, 내가 그저 한 발자국 앞을 내디뎠을 때, 외로움 대신 ‘함께’라는 선물이 스무일곱 해 만에 나에게 찾아왔다. 


어떤 이는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라며, 그 누구도 믿지 말고, 오직 자신만 믿으라는 이야기를 지금의 나에게 하기도 한다. 아마 몇 년 전의 나였으면 전적으로 동의하였겠으나, 지금은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사람은 관계적 동물이다. 사람은 함께하는 동물이다. 성인이 된 사람은 독립적인 존재일 수는 있겠으나, 다른 이와의 관계없이는 잘 살아갈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각자의 흉터를 꺼내놓는다. 아마 그 흉터를 꺼내 놓는 사람들 자신조차도 모를 것이다. 그 각자의 사회적 가면 틈 사이로 각자의 흉터가 드러나 있으며, 서로가 서로의 흉터를 무의식 중에 의식하게 되며, 그렇게 서로 간의 신뢰가 쌓여가는 것이 아닐까 감히 추측해 본다.


다만 수년 전에 나 또한 놓친 부분이 여실히 있었다. 상처는 관리해야 한다. 상처가 났을 때 제 때 약을 바르지 않거나 상처 부위가 오염되면 그 상처는 곪는다. 심할 경우 그 부위가 썩어 잘라내기도 해야 하는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마음도 다를 이유가 없다. 한번 다친 마음은 그 부위에 새 살이 올라와 흉터가 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혹은 그 주위에 있는 자들이 함께 관리해주어야 한다. 상처가 깊을수록 자주 붕대를 갈아주며 약을 발라주기도 해야 하며, 필요할 경우 따로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기도 해야 한다. 

상처가 곪고, 상처가 썩으면 악취가 난다. 그리고 그 악취를 가장 먼저 맡는 사람은 상처 입은 그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이 자신에게서 악취가 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그 사람은 숨는다. 이 악취로 인해 아무도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숨는다. 아니다. 사람들은 그 순간에도 당신에게 다가오려 한다. 다가오고 싶다. 다만, 당신이 그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우리는 당신을 만날 수 없다. 이 문을 우리가 강제로 열고 들어오면 주거침입과 같은 무례한 행위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당신의 문 앞에서 당신을 부를 뿐이다. 가끔 문을 두드리기도 하며, 그 문 틈으로 편지를 건네기도 한다.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당신의 문을 두드리는 나와 우리 또한 각자에게 그 문을 열었다. 그리고 당신의 상처에서 악취가 나던 나지 않던, 그것은 전혀 상관없다. 그 상처가 흉터가 될 때까지, 새 살이 돋을 때까지,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 함께 가자. 함께 있자.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그런 방법으로,

나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당신도, 이제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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