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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Feb 14. 2019

차라투스트라는 말한다, 너희는 서주만 안다고.

본격 SKY캐슬 헌정 4부작 <4>

클래식 음악을 통틀어 이토록 서주가 널리 알려진 작품이 얼마나 있나 싶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서주‘만’ 알려진 작품이죠. 악장 구분 없이 연주시간 30분이 넘으니 꽤 규모가 있는 곡입니다만, 맨 앞, 1분 30초에 해당하는 서주는 어느 부분만 들려줘도 길가는 사람 모두 알만큼 잘 알려졌죠.


이 서주가 들어간 광고가 많지만, 근래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건 이 감기약 광고 같습니다. (‘짜먹는 감기약’과 작품명이 어찌나 자연스럽게 연결되는지....) 




더블베이스의 트레몰로가 깔리고 트럼펫이 울리면 오케스트라 전체가 터져 나오고 팀파니가 저벅거리며 가세합니다. 그렇게 두 번 반복된 후 음악은 마침내 폭발하는 듯하며 알 수 없는 어딘가로 도달해요. 그리고 오르간의 여음을 남기고 서주는 끝이 납니다. 어둠 속에서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일출’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죠. 겨우 1분30초 사이의 일입니다.




두다멜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입니다. 팀파니 연주자의 신들린 연주도 무척 좋지만, 심벌 주자의 영혼까지 끌어 모은 결전의 타격에는 절로 박수가 납니다!


그 유명한 서주 이후에는 여덟 개의 표제 부분이 이어집니다. ‘후세 사람에 대하여’, ‘위대한 동경에 대하여’, ‘환희와 열정에 대하여’, ‘매장의 노래’, ‘과학에 대하여’, ‘병이 치유되는 자’, ‘춤의 노래’, ‘밤의 나그네의 노래’인데요, ... 무슨 음악의 제목이 이런가, 생각이 드는 순간, 니체를 의심하게 됩니다. 맞아요. 그 때문입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죠.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들었다고도 하고요. 그가 쇼펜하우어에 품었던 관심은 자연스레 니체로 이어졌습니다. 니체의 사상이 응축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접한 그는, 니체의 저서를 음악으로 형상화하기 시작했죠. 1896년 8월 24일, 곡을 다 쓴 뒤, 악보 표지에는 니체의 책 서문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각 부분의 표제는 4부로 이뤄진 니체의 책 소제목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곡이 발표되고 철학을 음악으로 옮기는 것에 대한 찬반양론이 일어나자, 슈트라우스는 한 발 물러나, 이 곡은 그저 니체의 천재성에 대한 찬사일 뿐이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니체의 분신과도 같은 차라투스트라는, 산 속에서 신이 죽었다는 깨달음을 얻고 인류에게 내려와 그 깨달음을 전파하는 인물입니다. 신이란 존재는 그가 위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빈약하기 때문에 존재했던 것. 고로 그는 인간 세계를 탐구하면서 스스로 ‘초인’이 되어갑니다. 라고 이해했지만, 제게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예송(예체능이라 죄송)하네요.

 

니체가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 초판의 표지입니다.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스)


드라마 SKY캐슬에서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과 음악이 각각 한 번씩 나란히 등장해서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효과적인 카메오랄까요.

 

독서 토론 모임 <옴파로스>, 고딩 중딩 학생들과 그 엄빠들이 모여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는데, 고르는 책들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 중 하나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예요. 이 동네에 막 이사 온 우주 엄마(이태란 분)는 전직 동화 작가에 인문학적 소양이 좀 있는 아줌마임에도, 오히려 그렇기에 더, 사전 지식 없이는 읽기 힘든 이 책을 선정한 것에 대해서, 그리고 더 직접적으로는 폐쇄적인 토론 분위기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 독서 모임의 좌장인, 자뻑에 죽고 자뻑에 사는 차민혁(일명 ‘파국’ 교수)의 자존심에 흠집이 나면서 긴장은 고조되죠. (차민혁이 억울해하며 말합니다. 그 책은 중고생 필독 도서라고요. 그 도서 선정하신 분들은 중고딩 때 그 책들 자기 전 머리맡에 두고 즐겁게 읽으셨는지 묻고 싶....)


 

결국 모임의 존치여부를 묻는 비밀 투표를 하고, 서울의대 준비를 위해 어려운 책들을 읽어 제껴야 하는 예서를 빼고는 아이들 대다수와 차민혁이 꼴 보기 싫은 강준상(예서 아빠) 같은 어른의 반대로 모임은 폐지됩니다.


옴파로스 독서 토론 모임. 이날 예서는 '초인'을 자뻑의 힘이라고 발표하고 차교수의 칭찬을 듣죠.



드라마에서 쓰인 두 번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음악입니다. 역시 차교수네 얘기인데요. 끝이 난 것은 독서 모임만이 아닙니다. 쌍둥이 아들을 직접 가르치는 공부방은, 집중을 위해서 외부의 햇빛과 소리를 차단시킨 어두컴컴한 장소입니다. 그 안에서 쌍둥이는 피라미드(다단계 아님) 꼭대기로 올라가라는 아버지의 강압적인 교육방식 아래서 공부를 하며 질려가고 있죠. 가족을 위해 12첩 반상을 차리는 일만 알았던 여자여자한 쌍둥이 엄마 노승혜(윤세아 배우, 첫 주연 맡았던 아침드라마 <당신 참 예쁘다>때부터 잘보고 있어요^^ 오래오래 연기하시길 바라며...)는 남편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첫 걸음을 떼죠. 공부방을 부수는 거로요. 평화로운 스카이 캐슬의 아침, 쌍둥이네 집에서는 인부들바삐 움직입니다. 차교수 오기 전에 방음방을 다 부수려면 서둘러야 하니까요. 그 와중에 노승혜는 예의 그 차분한 말투로 아저씨께 부탁을 해요. “아저씨 그 망치좀 주세요....” 그리고는....

 

 

 




몇 번의 영혼이 실린 해머질 끝에 철제 벽이 뚫리고 거기서 햇빛이 새어 들어옵니다. 노승혜의 표정도 눈부시죠.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상황이 펼쳐질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때 들려오는 음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주입니다.





(다시 책으로..) 책이 어려운지라, 역자의 작품 해설을 천천히 읽어보며 이해의 뼈대에 살을 붙여나갔습니다. 니체가 책에서 주장하는 ‘초인’의 반대 개념으로 설정한 ‘말종인간’(이름 참....)이란 존재에 대해서, 역자는 이렇게 설명하는데, 그 말이 가슴을 찌르더군요. 여기에 옮겨봅니다.


그들 모두는 똑같은 것을 원하고, 똑같을 뿐이며, 삶의 유일한 목표는 자기 보존이다. 그들은 남들이 행복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기며, 남들이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을 자신에게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긴다



니체가 제 얘기를 하는 건가 싶어 섬뜩해지네요. 저 역시 나름의 소신으로 살고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불쑥불쑥 남들의 눈을 의식하게 되니 말입니다. 니체가 지금까지 살았다면 ‘인별그램’이나 ‘얼굴책’ 같은 SNS를 보면서 ‘거 봐, 거 봐,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라고 말 할 것 같기도 하고요. 니체의 생각들은 현대인의 삶을 보여주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요, 유튜브에는 이 어려운 책을 함께 읽거나, 설명하고 풀어주는 영상들이 많습니다. 드라마도 한 몫 한 것 같습니다만.

 



그 유명한 서주 이후의 음악을, 꼭 한 번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것들이나 밝은 조명을 피해서, 밤에, 이어폰을 꼽고, 음악, 그 소리남에만 집중해서 단 한 번만 들어본다면. 웅장한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포효에서부터 독주 현악기의 얇고 가느다란 텍스처를 오가는 관현악의 향연을, 현 파트와 금관 파트의 힘겨루기를, 평화와 전쟁을 넘나드는 감정의 파도를, 그리고 무엇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아하! 그러네, 하면서 파악하며 듣고있는 감상자 자신을 발견할 수 있죠. (서주를 넘어선 우리는 말종인간을 넘어서 초인을 향해 나가는....쿨럭...) 

 

그런 면에서 이 곡의 서주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해가 뜨는 과정을 공전과 자전에 관한 지구과학책으로 설명하기보다, 이렇게 음악으로 들려주면 얼마나 강렬한가요. 영화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처럼 외계 유인원이 인간으로 진화하는 장면에 나오면 얼마나 인상적인가요. 이전 것이 지나가고, 보세요, 새 일이 시작되리니, 휘둘리지 않고 의지적으로 살아가는. 그것이 음악이든 공부든, 생각이든 삶이든, 다시는 마감에 쫓기며 글을 쓰지 않는 '초인 작가'가 되겠다는 다짐이든, 말입니다.

 



띄엄띄엄 읽었던 본문에 맘에 드는 구절이 하나 있더군요..

민음사 책 P.65


내가 신을 믿게 된다면 그 신은 다만 춤출 줄 아는 신이리라





덧붙여 <SKY캐슬> 속에 등장한 음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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