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아이티(Haiti)에 강진이 발생해 큰 피해를 입자 UN과 여러 나라들은 아이티 긴급 구호와 재건을 위해 평화 유지군(PKO)을 파견한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티에 갑자기 콜레라가 발생한다. 지진으로 망가진 보건 시스템 탓에 콜레라는 빠르게 퍼져 나갔고, 무려 1만 명이 넘는 아이티 주민이 목숨을 잃게 된다. 콜레라는 심지어 이웃 국가인 도미니카 공화국과 쿠바까지 퍼져나갔다.
안 좋은 일은 원래 한꺼번에 몰려오는 걸까? 어떻게 지진과 콜레라가 연이어 아이티를 강타한 것일까? 콜레라는 아이티와 중남미에 흔한 질병이 아니었다.
그 배경으로 UN 평화 유지군이 지목됐다. 한 언론은 아이티에 주둔하는 UN 평화 유지군이 정화되지 않은 하수를 그대로 아이티 강물에 버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이티에 처음 콜레라가 발병한 게 대략 10월경인데, 이는 UN 평화 유지군이 아이티에 도착한 시기와 일치한다. 첫 콜레라 환자는 UN 군부대 근처에 살았는데, 식수뿐 아니라 모든 생활용수를 그 강에서 얻고 있었다. 나중에 제기된 가설은 동남아시아에서 파견된 평화 유지군 중에 콜레라에 걸린 이가 있었고, 그의 배설물이 정화되지 않은 채 강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콜레라가 급속도로 확산되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UN 서부 사하라 임무단(MINURSO) 팀 사이트(Teamsite)에서는 모든 쓰레기를 소각해버렸다. 당직 장교가 현지인 직원과 함께 픽업트럭에 쓰레기를 싣고 사막으로 나가, 경유(디젤, Diesel)를 뿌리고 그날의 쓰레기를 모두 태워버렸다. 사막 한가운데서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세계적으로 지구 온난화나 미세먼지 같은 환경문제가 심각한 상황임을 생각하면 그렇게만 생각할 수도 없다.
한국인 최초 국제기구 수장이 된 세계 보건기구(WHO)의 ‘이종욱 박사’는 WHO 본부가 있는 제네바에서 본인의 관용차량으로 소형 하이브리드 차량을 이용했다고 한다. ‘세계 시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WHO 사무총장이 시민들의 건강을 해치는 내연기관 차량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게 약 20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평화 유지 임무단에서 매일같이 쓰레기를 소각하고 있다니. 심지어 캔, 종이, 플라스틱과 같이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마저도 태워버렸다. 환경오염을 줄이고 초국가적 환경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할 UN이 오히려 환경을 해치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셈이었다.
재활용품 소각이 임무단 본부의 ‘공식적인 지침’은 아니었다. 언젠가 본부에서 재활용품 처리에 대한 새로운 지침이 내려왔다. 팀 사이트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본부로 행정 정찰(Admin Patrol)을 가는데, 한 달 동안 모은 재활용품 쓰레기를 행정 정찰 차량에 실어 임무단 본부로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재활용품을 한 달 동안 모아둘 장소도 마땅치도 않거니와, 50도에 육박하는 기온에 쓰레기를 1달씩이나 썩게 둘 수는 없었다. 게다가 트럭도 아닌 일반 SUV 차량 2대, 많아야 3대 정도 가는 행정 정찰에 1달 치 재활용품 쓰레기를 모두 싣고 8~9시간을 운전해 가라고? 악취와 유독가스에 질식하기 십상이었다. 전형적인 ‘전시 행정’이었다.
국제기구와 구호활동에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문제가 ‘성 비위’ 문제다. 얼마 전 WHO 사무총장은 에볼라 대응을 위해 콩고에 파견한 WHO 직원들이 현지인 성 착취와 같은 성 비위를 저질렀음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확인된 피해자만 수십 명에 달했고, 충격적인 것은 WHO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유니세프’, ‘월드비전’, ‘국경 없는 의사회,’ ‘옥스팜’ 같은 대형 구호 단체들도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국제기구나 구호 단체의 성 비위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이티 강진 당시에 옥스팜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소속 직원들이 현지에서 성매매를 한 사실이 밝혀졌고, 이 ‘국제기구 스캔들’은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영화 ‘내부 고발자(The Whistleblower)’는 국제기구의 성 비위 문제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미국 경찰이던 주인공 ‘캐서린(레이첼 와이즈, Rachel Weisz)’은 ‘큰돈을 벌 수 있다.’라는 말에 평화 유지군에 지원한다. 임무단 현장에서 발생한 소녀 살인을 조사하던 그는 소녀가 인신매매를 당했고 그 배경에 UN 평화 유지군이 있다는 걸 밝혀낸다. 영화는 숱한 방해와 압박 속에서도 세상에 진실을 알리기 위한 주인공의 처절한 몸부림을 그리고 있다. 놀랍고 무서운 것은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쟁이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119 같은 신속한 지원은 필수적이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놓치는 부분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뜩이나 분쟁이나 재난으로 상처 입고 취약한 현지인들에게 도움을 핑계로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숭고한 평화 유지의 정신과 활동을 먹칠을 하는 것이다.
없던 병을 옮기고, 환경을 해치고, 여성을 착취하는 평화 유지라니.
“도대체 누구를 위한 평화 유지야?”
* 2016년 8월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2010년 아이티 콜레라 발병 초기 단계에 UN의 일부 책임이 있으며, UN이 이를 인정했다’는 내용의 기사 “UN이 아이티 콜레라 창궐 책임을 인정하다(U.N. Admits Role in Cholera Epidemic in Haiti).”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