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긴급 후송(CASEVAC) 있다는데 알고 있었어?”
“우리 팀 사이트(Teamsite)? 아니, 몰랐는데. 갑자기 CASEVAC 있대?”
“방금 임무단 본부에서 CASEVAC 항공 운항 계획을 보내왔어.”
정찰을 마치고 팀 사이트에 복귀했는데 당직을 서고 있던 브라질 출신 카를로스 대위가 ‘긴급 후송(Casualty Evacuation, CASEVAC)’에 대해 아는지 물어 왔다. CASEVAC은 지뢰나 불발탄 같은 폭발 사고를 당한 환자나 실명 위험처럼 심각한 상태의 환자를 후송하는 것을 의미했다.
아무 사고도 없었는데 갑자기 우리 팀 사이트에서 CASEVAC을? 수소문해 보니 인근 팀 사이트에서 민간인이 지뢰를 밟아 부상을 당했는데 UN이 인도적 차원에서 폴리사리오(Polisario) 망명 정부가 있는 알제리 틴두프(Tindouf)까지 후송해 주기로 한 것이었다.
모든 팀 사이트에 수송기가 내릴 수 있는 활주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규모가 작은 팀 사이트에는 헬기장만 있었는데, 하필 그 팀 사이트에 활주로가 없어 우리 팀 사이트까지 헬리콥터로 온 뒤 다시 수송기를 갈아타야 했던 것이다.
갑작스레 CASEVAC을 맞을 준비를 해야 했다. 마침 팀 사이트 지휘관과 부지휘관 모두 정찰(Patrol)에서 돌아오기 전이라 작전장교인 카를로스와 내가 준비를 맡았다. 문제는 항공기 운항 계획 말고 아무런 정보가 없다는 것이었다. ‘환자 상태가 어떤지? 앉을 수는 있는지? 팀 사이트에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아무 정보가 없었다.
“우선 헬리콥터랑 수송기가 동시에 오니까 ‘항공 통제 장교(Air Terminal Officer)’도 2명이 있어야겠어.
오늘 작전 대기(Standby) 누구지?”
우리 팀 사이트에는 앰뷸런스가 없었는데 환자가 앉아서 이동할 수 없다면 픽업트럭 화물칸에 태워 수송기까지 이송해야 했다.
“혹시 모르니 들것도 준비해 봐.”
당연히 환자가 들것에 실려 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헝가리 출신 벨라 대위는 들것도 준비하자고 했다. 벨라는 UN 서부 사하라 임무단(MINURSO) 파견만 두 번째에 햇수로 5년 정도를 서부 사하라에서 보낸 베테랑이었다. 벨라의 말대로 들것과 구급함도 준비했다.
팀 사이트에 남아있는 모든 옵서버(Observer)를 불러 모았다. 활주로에 나가 있던 항공 통제 장교가 무전으로 수송기가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려왔다. 이제 헬리콥터만 오면 된다. 작전 차량과 픽업트럭에 나눠 탄 옵서버들은 헬기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요란한 모래바람과 함께 헬리콥터가 팀 사이트 앞마당에 내렸다.
헬리콥터 뒷문이 열리고 환자를 처음 마주했다. 간이침대에 누워 있던 그는 왼쪽 발을 붕대로 감싸고 있었는데, 왼쪽 발이 없었다. 지뢰에 발을 잃은 것이었다.
환자와 동행한 MINURSO 군의관은 이 상황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우리를 보자 군의관과 간호사는 아무 말도 없이 헬리콥터에서 내려버렸다. ‘우리 보고 어떻게 하라고? 우리는 의료인이 아닌데?’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던 우리는 가져온 들것을 펼치고 환자에게 다가갔다.
처음 경험하는 일을 하다 보면 알던 지식도 기억이 안 날 때가 있다. 하필 내가 환자의 하체 쪽을 맡았는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던 나는 환자의 다친 다리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어 환자를 들어 올렸다. 환자가 순간 “아악!” 비명을 질렀다. 환자의 비명을 들은 군의관이 헬리콥터에서 내리다 말고 돌아와 말했다.
“환자 아래 있는 담요를 들어요.”
그랬다. 보통 환자를 옮길 때 환자가 누워있는 담요를 들어 옮기는데, 분명 나도 배워서 아는 내용인데 막상 실제 상황에 닥치니 머리가 백지가 되어 버렸다.
“여기는 앰뷸런스가 없나요?”
픽업트럭을 본 군의관은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할 앰뷸런스 현황을 우리에게 묻고는 작전 차량에 타버렸다. ‘의사가 환자 곁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의구심과 함께 나와 다른 옵서버 그리고 간호사만 환자와 함께 픽업트럭 화물칸에 올라탔다. 한 명은 링거 병을 잡고 나머지는 들것을 잡아 환자가 흔들리지 않게 했다.
환자에게 무리가 가지 않게 최대한 천천히 픽업트럭을 이동했다. 수송기에 도착해 보니 승무원들이 좌석 위에 환자용 간이침대를 설치해 놓았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담요를 잡아들고 환자를 수송기 간이침대에 옮겼다.
내 실수로 해프닝이 있기는 했지만 환자를 수송기까지 안전히 이송할 수 있었다. 수송기가 먼저 틴두프를 향해 떠나고 헬리콥터도 머지않아 우리 팀 사이트를 떠났다. 팀 사이트에 돌아온 우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민간인 환자를 무사히 이송했다는 보람과 감동에 사로잡혀 있었다.
감동과 환희는 얼마 가지 못했다. 사실 사고는 전날 밤에 났는데 UN이 “야간에 비행하지 않겠다.”라고 해 오늘에서야 후송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흙바닥 활주로에 등(Light)이나 계기 비행 장비가 없어 밤에 비행하기 어려운 건 알지만 실망스러웠다. 실망도 실망이지만 걱정이 됐다.
‘전날 밤에 후송했다면 환자의 발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사고를 당한 사람이 우리 옵서버였다면? 그래도 밤에는 비행을 안 할 건가?’
‘우리는 이런 임무단을 믿고 작전을 해도 되는 걸까?’
나중에 임무단 본부 의무대를 방문한 나는 다시 한번 실망하고 말았다. 헬리콥터 간이침대에 누워있던 환자 옆에서 ‘기념 촬영’한 사진을 본 것이다. CASEVAC에 동행한 군의관과 간호사였다. 자신들에게는 업적일 수 있지만 환자에게도 인권과 프라이버시가 있는데, 이걸 자랑이라고 걸어놓다니... 제대로 된 의료인인가?
임무단 사령관(Force Commander)과 의무대는 같은 국가 출신이었는데, ‘기념사진’을 보자 문득 만찬장에서 비서실장처럼 사령관의 움직임을 살피다가 무전기로 차량을 대기시키던 의무대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본업에나 충실하지... 도와주고도 욕을 먹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