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렉시테리언 Oct 01. 2021

손등에 입 맞추던 소녀

법륜 스님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구호와 자선활동에 대한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스님이 성지순례 차 인도 캘커타를 방문하고 있었는데, 한 여성이 스님의 팔을 잡아끌고 작은 가게로 안내했다. 자신의 아이에게 먹일 분유를 사달라는 것이었다. 분유 가격이 60루피라는 말에 놀란 스님은 여인의 부탁을 거절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 60루피가 우리 돈으로 얼마인지 물어본 스님은 충격에 빠졌다. 60루피가 우리 돈 고작 2,400원 정도였던 것.


‘중생구제를 외쳤지만, 막상 마주하니 겁을 내고 도망가 버렸구나.’


스님은 밖으로 나가 여인을 찾았지만, 다시는 그 여인을 만날 수 없었다.


이 일을 계기로 스님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로 결심한다. 하루는 스님이 인도의 작은 시골 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아이들을 발견한 스님은 평소처럼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줬지만, 아이들은 사탕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도망쳤다. 캘커타의 아이들 같았으면 먼저 달려들었을 텐데.

시골 마을의 아이들은 낯선 사람이 왜 사탕을 주는지, 그들이 왜 그것을 받아야 하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 대가 없이 그냥 주니까... 자선 활동이 오히려 캘커타의 아이들을 구걸하게 만들었구나....


도와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 도움이 그들로 하여금 구걸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스님은 그 뒤로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학교에 오게 하고, 학교 과정을 통해 도움을 주는 형태로 자선활동 방식을 바꿨다.




처음 서부 사하라에 도착하던 날, 비행기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흙으로 다져진 라윤(Laayoune) 공항 활주로에 내렸다. 임무를 교대하게 될 한국군 선배를 만나, UN 차량을 타고 바로 임시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데 히잡(Hijab)을 두른 한 소녀가 환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손을 내 앞에 내밀었다. 곁에 있던 아이 엄마는 소녀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뜻이지? UN 군을 보고 반갑다고 악수를 청하는 건가?

아무리 어린아이지만, 이슬람 지역인데 여성의 손을 함부로 잡아도 되나...?’


내가 어리둥절하며 멀뚱멀뚱 서 있자, 옆에 있던 선배가 말했다.


“한 대위, 그거 UN인 거 알고 돈 달라는 거야. 버릇되니까 주지 마.”


한국말을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평소 성공률이 높지 않은 건지 주춤하는 나를 본 아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발걸음을 옮겼다. 서부 사하라에 도착해 처음으로 만난 현지인이었다.



서부 사하라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사실상 수도인 라윤(Laayoune) 시내에는 UN 직원을 상대로 구걸하는 아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UN 직원들이 자주 드나드는 식당이나 호텔 주변에는 어김없이 구걸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한 번은 UN 차량에서 내려 동료들과 식당으로 향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소녀가 쫓아오며 구걸하기 시작했다. 울먹거리며 끈질기게 따라오던 소녀는 급기야 내 손을 잡고 손등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너무 놀란 나는 뿌리치듯 내 손을 잡아 빼고는 도망치듯 식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식사하는 내내 소녀가 신경 쓰였다. 놀라서 나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지만 아이가 공격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지, 아직도 밖에서 구걸하고 있는 건 아닐지.


아무리 언어가 달라도 “마마”라는 단어는 대부분의 언어에서 “엄마”를 뜻한다. 소녀의 울먹거림 속에서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던 그 “마마”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엄마가 아파요.”

“돈 못 벌어 가면 엄마한테 혼나요.”


이런 뜻이었을까?


식당을 나와 소녀를 찾아봤지만, 소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늦은 시간에 어린 소녀가 바깥을 헤매지 않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진작 도와주지 못한 미안함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뒤로 그 식당에 갈 때마다 소녀를 찾아봤지만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구걸과 거저 주는 것에 익숙해지면 오히려 그들을 망칠 수 있다’


사실 저 소녀를 만나기 오래전부터 가졌던 생각이었다. 과연 무작정 도와주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까? 그들을 너무 의존적으로 만드는 건 아닐까?


이 생각들은 소녀를 만나고 무너졌고, 머릿속은 수많은 질문과 혼란으로 가득 찼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UN 평화 유지군에 지원해 이곳까지 왔는데, 막상 도와달라는 사람을 마주하곤 도망치고 있다니.


그날 그 식당 앞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이었을까? 자선 사업가가 아닌 나는 당장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도와줄 수는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질문에 대한 뚜렷한 답을 찾진 못했다.


소녀가 울먹이며 내 손등에 입을 맞추던 모습과 당황스러웠던 내 감정만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을 뿐.

이전 05화 그 땅에 무슨 일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