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왕따, 이만하면 잘 컷다.
중학교 때 나는 자발적 왕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씨게 겪으면서 주변 친구들까지 돌아볼 정신이 없었고, 중2병의 또 다른 형태로 홀로 독야청청 한 척했나 싶다. 가만히 두면 조용하지만, 말싸움에 지는 타입은 아니어서 그랬는지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나를 다독여주어서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 서넛은 항상 곁에 있었다. 나처럼 4가지 없고 팩폭러인 중2병 환자에게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는 것은 내 인생에 있어 큰 행운이 아닐까.
행운 뒤에 또 행운일 수는 없기에 졸업 후 사회생활은 늘 힘들었다. 그때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댔지만, 지금 생각하면 사회성 없던 내게도 문제는 있었다.
그랬던 내가 40대 초에 만난 수필동아리 선후배들과 햇수로 10년이나 잘 지내며 동아리 회장도 맡아 큰 문제 없이 끝마친 것은 다시 한번 행운이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장이 공자에게 인仁에 관해 물었을 때, 공자가 말한 다섯 가지 내용이 있다. 이것은 인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공자의 처세술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고 임헌영 평론가는 말했다. 알고 행동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쩌다 보니 처세를 잘하게 된 내 경우와 비교해 보았다.
첫째 공손하면 모욕을 당하지 않는다. 공恭
막 40대에 들어섰을 때, 수필동아리 수수밭에 처음 갔다. 맏딸이어서 그런지 언니 노릇이 익숙했고, 늦둥이 막내 덕에 어쩌다 어린이집 모임이라도 가면 왕언니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수필동아리에 갔더니 어린 친구가 왔다며 다들 좋아하고 반겨주었다. 처음 받아보는 막내에 대한 귀여운 눈빛에 나도 모르게 선배들에게 공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들어오는 후배들도 말이 후배지 인생 선배였기에 공손함에 익숙해졌다. 귀염받으며 무럭무럭 커갈 수 있었다.
둘째 관대하면 사람을 얻는다. 관寬
나는 기본적으로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게도 엄한 잣대를 들이대서 늘 쫓기듯 살아왔다. 그러나 수수밭에서 만난 여러 문우와 교류하고 문학으로 치유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전에 없던 여유가 생겼다. 이때 알게 된 사실은 여유로운 사람이 관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것도 그런 의미 아닐까? 마음의 곳간이 여유로워지니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갔다. 수수밭 박 작가의 「아님 말고」라는 수필과 또 다른 박 작가가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라는 말이 내게는 크게 와 닿았다.
셋째 신뢰가 있으면 사람들에게 쓰임이 있다. 신信
이 경우는 내게 약간 다른 의미였다. 막내라서 총무를 맡게 되었을 때, 나는 너무도 미숙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선배들은 내게 조건 없는 믿음을 보이며 지지해주었고, 그 덕에 나는 나이 40이 넘어서야 겨우 쓸모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넷째 민첩하면 공을 세운다. 민敏
앞서도 말했다시피 나는 수수밭 막내였다. 집에서 맏이였던 나는 동생에게 온갖 심부름을 시키는 진상 누나였다. 그래서 막내는 온갖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있었나 보다. 집에서 나는 허리 부러진 사람처럼 시간만 나면 눕는 사람이었지만, 수수밭에서의 나는 엉덩이가 가벼운 사람이었다. 민첩과는 거리가 먼 내가 자연스럽게 칭찬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달까.
다섯째 은혜를 베풀면 사람을 쓸 수 있다. 혜惠
수수밭에는 짝꿍 제도가 있다. 선배는 멘토가 되어 후배에게 글쓰기에 대한 조언도 해주고, 동아리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여러 가지 안내를 해주는 역할이다. 수수밭 합평에서 단련 받고, 선배들에게 배운 대로 나는 내가 선배가 되었을 때 멘토 역할을 충실히 했다. 누군가의 글에 대해 조언을 얹는다는 것은 부담스러웠으나 한편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은혜를 베풀었다기보다 좋아서 했던 일이 누군가에게는 등단을 앞당기는 일이 되었고 회원들은 내게 무척이나 협조적으로 되어 동아리 운영에 큰 도움이 되었다.
子張問仁於孔子, 孔子曰
자장문인어공자, 공자왈
能行五者於天下爲仁矣
능행오자어천하위인의
請問之 曰 恭寬信敏惠
청문지 왈 공관신민혜
恭則不侮, 寬則得衆, 信則人任焉,
공즉불모, 관즉득중, 신즉인임언,
敏則有功, 惠則足以使人
민즉유공, 혜즉족이사인
원문은 슬쩍 지나쳐도 된다.
학창시절에 『논어』를 봤더라면 자발적 왕따의 사회생활이 좀 더 편했을까. 돌아왔지만 서울로 잘 당도했으니 된 걸까. 아무튼, 공자의 공관신민혜恭寬信敏惠 다섯 글자를 온몸 부딪혀 깨달았으니 이만하면 잘 큰 거로 마무리, 이제 잘 늙을 일만 남았다.
윤리의식과 문학 사상에 대한 강의는 임헌영의 문학과 인문학3을 참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