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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티 Sep 29. 2024

이방토끼

 어린 내가 어쩌다가 혼자서 산속을 헤매게 되었는지는 정확한 기억이 없다. 그날도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정신없이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어지간히 배를 채우고 고개를 든 순간,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한순간의 일이었지만, 이런 일이 내게 생긴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상상도 못할 만큼 커다란 호랑이가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도망가야겠다거나, 살려달라 매달려야겠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나는 호랑이를 보자마자, 그가 채 앞발을 휘두르기도 전에 기절하고 말았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눈이 떠졌다. 슬며시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보니 내 발가락은 그대로 남아있었고, 아프지도 않았다. 아직 내가 살아 있었다.      


 호랑이 굴이었다. 굴에는 나를 물고 온 호랑이 외에도 덩치가 산만 한 호랑이가 세 마리나 더 있었다.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그제서야 생각나 제발 진정하자고 나를 다독였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내 혼은 이미 먼 곳으로 떠나버린 것 같았다.


 나를 물고 온 호랑이는 이 무리의 대장이었다. 대장 호랑이가 갑자기 그 큰 얼굴을 내게로 들이밀었을 때는 ‘이제야말로 죽는구나!’하고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그는 까칠까칠한 혀로 내 털을 핥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죽은 듯이 몸을 맡겼다. 그의 혀는 얼마나 큰지 쓱 하고 한 번만 핥아도 공포로 곤두선 내 등의 털이 단번에 깨끗하게 누웠다. 그와 눈이 마주치지 않을 만큼만 실눈을 뜨고 그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그의 눈꼬리는 팔자로 내려가 있었고, 꼬리도 느긋하게 처져 있었다. 게다가 내 털을 핥아주었지 않은가. 지금 당장은 잡아먹지 않을 게 분명했다.

‘휴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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