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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티 Sep 29. 2024

아빠 호랑이

 나를 물고 온 호랑이는 호랑이 가족의 아빠였다. 아빠 호랑이는 이 굴의 대장이면서도 사냥 실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 굴의 최고 사냥꾼은 엄마라고 불리는 암컷 호랑이였고, 아들 호랑이마저 자신보다 큰 짐승을 사냥해 오곤 했다. 아빠 호랑이는 그런 가족에게 열등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산에서 나를 바로 잡아먹지 않고 굴까지 물고 온 것도, 가족에게 자기의 사냥 실력을 뻐기고 싶었던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빠 호랑이는 가족이 보는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나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이미 배가 부른 호랑이들은 생쥐만큼이나 조그만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는 그제서야 자기가 생각해도 보잘것없는 사냥감이다 싶었던지 머쓱해지고 말았다. 빳빳하던 귀와 꼬리에 힘이 빠지면서 나를 힐끗 쳐다보다가, 동그랗게 몸을 웅크리고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을 곁눈질하는 내 눈과 마주쳤다. 공포에 몸을 떠는 토끼에게 전에 없던 동정심이 생겼던 걸까? 아니면 아기 같은 내 모습이 그의 부성애를 건드렸던 걸까? 그도 아니면 자비로운 어느 신이 도우셨던 걸까?  어쨌든 나는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나는 알았다. 이 굴에서 살아남으려면 아빠 호랑이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것을. 별로 웃기지 않은 아빠 호랑이의 이야기에도 나는 호들갑스럽게 웃었다. 아빠 호랑이가 꼬리를 위로 살짝 흔들 때는 얼른 의 등에 올라타 등을 긁어 주었다. 그는 등이 가려울 때는 꼬리를 위로 흔들고, 기분이 좋을 때는 꼬리를 아래로 흔드는 것을 나는 알았다.      


 아빠 호랑이도 알았을 것이다. 내가 자신의 비위를 맞추려 얼마나 안간힘을 쓰는지. 사냥이 서툴러 가족에게 위신이 서지 않던 그는, 살아남으려 애쓰는 내게서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았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빠 호랑이는 이상할 정도로 나를 예뻐했다. 그는 낯모르는 호랑이 앞에서도,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본 적이 있냐고 호랑이답지 않게 호들갑을 떨며 나를 자랑했다. 내가 날고기를 먹고 배가 아파서 울면 엄마 호랑이는 시끄럽다고 싫어했다. 그럴 때면 아빠 호랑이는 나를 등에 태우고 굴 밖으로 나갔다. 아빠 호랑이의 등에 몸을 늘어뜨리고 바라본 산은 고요했고, 어둠 속에는 아빠 호랑이와 나만이 존재했다. 아빠 호랑이의 등은 따뜻했고, 기분 좋은 흔들림에 나는 아픈 것을 잊어버리고 잠이 들 수 있었다.       


 내게는 다정하기만 한 아빠 호랑이는, 이상하게도 아들 호랑이에게 으르렁거리기만 했다. ‘백수의 왕’으로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던지 아니면 수컷끼리 견제하는 본능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호랑이 굴에는 언제나 싸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 같으면 나는 얼른 굴 귀퉁이에 있는 바위틈으로 몸을 피했다. 다투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귀를 앞발로 접어서 막고, 몸을 웅크리고 호랑이의 포효가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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