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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사공사칠 Oct 20. 2023

Take A Look Around

클리쉐의 역습

'클리쉐'는 너무 많이 사용되어 고리타분한 작법을 의미한다. 파격이나 독특함이 필요할 때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클리쉐를 피해 작품을 차별화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클리쉐가 클리쉐로 자리 잡은 데는 이유가 있다. 너무 많이 쓰인 작법은 곧 그것이 반복할만한 매력을 지녔다는 뜻이다. 소나타의 A-B-A 구조, 트랩의 808 베이스와 스네어 등 클리쉐는 장르를 규정짓는 특징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장르의 그 클리쉐를 듣고 싶어 티켓을 산다.


이처럼 창작자가 피하면서 동시에 안고 가야 하는 대상인 클리쉐를 잘 이동하면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뉴메탈 그룹 Limp Bizkit이다. 8090 키즈라면 그들의 이름은 몰라도 어딘가에서 노래는 들어 봤으리라. 첩보물 <미션 임파서블 2>에 등장하는 곡이 바로 Limp Bizkit의 ‘Take A Look Around​'이기 때문이다.



이 곡은 힙합의 클리쉐와 메탈의 클리쉐가 만나 자신을 돌아보고 도전에 뛰어들자는 메시지를 던진다. 전주에 등장하는 기타 리프는 전형적인 락 사운드로 첩보물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드럼과 랩이 들어오면서 감상자의 공간은 곰팡내 나는 90년대 힙합 클럽으로 변한다. 랩을 마치고 그룹이 기를 모으자 소리치는 메탈 락커가 나온다. 강한 헤비메탈 사운드는 펑퍼짐한 청바지를 입은 이들을 순식간에 몰아내고 그 자리를 가죽옷에 체인을 단 이들이 채운다.


메탈과 힙합의, 뻔하다 뻔해 외면당했던 클리쉐들은 삶은 전쟁터고 나는 나를 믿어야 한다는 Limp Bizkit의 가사로 인해 힘을 얻는다. 뻔한 랩과 뻔한 기타 리프는 세상을 향한 공격적인 메시지에 얹혀 뻔하지 않은 소리로 변화한다. 20여 년 이상 흐른 지금도 팬들은 이 마법에 매료되어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버틴다.






사람들이 빽빽한 9호선에 몸을 맡기면 가끔 내 삶이 클리쉐라 느껴질 때가 있다. 무표정한 얼굴, 무감각한 업무, 컨베이어 벨트처럼 들락날락 하는 통장의 숫자를 바라보니 그러하다. 그때마다 클리쉐의 역습을 꿈꾼다. 뻔한 소리가 힘을 합쳐 불러올 천둥을 기다린다.








ps. 작가 추천 뉴 메탈 몇 곡


뉴 메탈은 90년대 후반부터 00년대 초반을 풍미한 락 장르 중 하나다. 혼란스러운 세기말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락, 메탈, 힙합, 일렉트로닉이 뒤섞여 시대를 대변했다. 곡을 들어보며 어떤 장르가 섞였는지 유추하는 재미를 느끼길 바란다. 뒤로 갈수록 매콤하다.


1. Slipknot - Duality

2. System Of A Down - Chop Suey!

3. Deftones - My Own Summer

4. Mudvayne - D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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