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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S Apr 05. 2023

큰 밴드 주세요

큰밴드줄게 씩씩해다오

'큰 밴드 주세요.'


자해한 아이들에게 제일 많이 듣는 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저 말을 들으면 순진하게도

약장에서 큰밴드가 어딨더라? 하고 찾았다.


그러나 이제 저말을 들으면

아이의 얼굴을 읽어본다.

잘못 읽을 때도 있지만,

제대로 읽은 것 같으면

더이상 줄선 아이가 없는지 확인하고,

어디에 붙일 건데? 하고 물어본다.


기어코 밴드만 내놓으라고 하는 아이에게는

선생님이 상처를 확인해야 되는 거라고

애둘러 꼬셔본다.

아직은 아이들이라 말랑해서

나의 두번째 권유에 웬만하면 넘어온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혹여 손목에 한참을 괴로워한

선명하고 날카로운 흔적이 보이면

다시 한번 아이의 얼굴을 읽어본다.


아이가 나를 어른으로 쳐다보고 있으면

선생님이 한번 안아줘도 돼?하고 꼭 안아본다.

이 아이를 다시 못안게 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꼭 안아본다.


나도 그저 부족한 사람이라

감정이 일관되지 못하지만,

지금 이순간만큼은 어른으로서, 교사로서

너를 지지하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어서이다.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는 아이를 보면

다른 아이들이 보지 못하게

얼른 요양실 안으로 넣어주고,

서로가 진정된 다음 연고를 두껍게 바르고

드레싱을 하며 몇마디를 나눠본다.

처음으로 7.5를 사보았다...상처가 커서


'얼마나 아팠을까! 안아퍼?

이거 안하면 안될까?

이게 방법이 아닌 건 너도 알지?

힘들 때 너를 달래 줄 다른 방법은 없을까?

네가 이럴만큼 힘들다는 걸 가족도 알고 있니?

언제 이랬어? 얼마나 이러고 있었던 거야?

처음이 아니구나?'


되도록 무게를 싣지 않고,

그렇다고 늘 있는 일인양 아무렇지도 않은 척도 말고

내 인생 최고의 연기력을 발휘하며 내놓는 말들에

아이가 반응을 보인다.


'어떻게 아셨어요?'


조금 입을 여는 아이와 몇마디를 더 나누고 보냈다.


학교에서 학생의 자해를 발견하면

당일로 보호자에게 알려야 한다.

그나마 요새는 위클래스가 자리잡아서

우리학교도 위클래스가 있고, 좋은 선생님도 계셔서

위클래스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교감선생님께도 알리고, 위기위원회도 연다.


자해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자해하는 행위를

아이들 스스로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해하는 것 밖에는

당면한 과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다른 방법도 있다고 알려줘야한다.


감히 자살하지 말기를,

감히 생명을 포기하지 말기를

이 시대를 같이 사는 여러분 모두에게 부탁한다.

어른들이 먼저 모범을 보이자.

애들에게 다른 방법이 있다고,

분명히 있다고 알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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