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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야 Nov 08. 2019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정답을 가르치는 일

에필로그

아이가 유치원 때까지는 지각을 해도 되고 결석을 해도 별 문제가 안 됐다. 그러나 초등학교 이후부터는 말 그대로 정답이 있는 세상에 진입한다. 학교를 지각해서도 학교를 결석해서도 안 된다. 그 정답은 문제를 풀고 답을 맞히는 것도 있지만 일종의 규칙, 규율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규칙, 규율은 공표되기도 하지만 드러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다 `어머, 다들 그러지 않나요?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어요?`라며 정색하고 닥쳐오는 것들도 많다. 
 

이런 난감함은 초등학교에서의 생활을 차츰 적응하며 해결된다. 아이는 초등학교부터 정식 교육을 받고 학교에서 정한 규칙에 따르고 이런 규칙에 익숙해진다. 공부를 잘하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모범적인 학생이 정답처럼 여겨지는 사회에 적응한다. 


그러다 갑자기 어른이 되는 순간 인생에서 정답이 사라진다. 정말 우리는 갑자기 어른이 된다. 어른들의 세상에선 학창시절 내내 제대로 길러본 적 없었을 창의성을 도제식으로 길러진 이런 아이들에게서 찾는다. 창의성은 전형적인 것의 틀을 깨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학교에선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창의는 실패를 전제로 하지만 우리 사회는 패자부활전을 허용한 적이 없다. 보통의 중산층 가정에서 가장이 실직하거나 다치거나 아프면 기초수급자로 전락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내 앞에는 폭풍우가 몰려오고 내 뒤에는 낭떠러지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나는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가려고 하지만 내 발목에는 상당한 무게의 고무바퀴가 걸려 있어 제 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 힘들게 느껴진다. 여기서 한 발 밀리기 시작하면 저 낭떠러지로 곧 추락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커진다. 내 손을 잡아주거나 날 보호해 줄 어떤 것도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런 험한 세상에서 학교에서 배운 규칙들이 절대 선일 수는 없다. 교육과 사회 현실이 일치하는 법이 오히려 드물다. 세상의 변화에 가장 둔감한 것이 교과서, 교육이라고 하지 않던가. 교과서대로 했다가 큰 코 다치는 일이 허다하다. 선생님 말씀대로 했다가, 그냥 말 잘 듣는 아이였다가..


학교 교육과 사회 현실에서 오는 괴리에 대해서는 대부분 함구한다. 나는 이 괴리로 인해 성인이 됐을 때 `어른들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가 반드시 아이에게 알려줘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이제 막 규칙을 알고 그 규칙에 적응해가는 아이에게 이 괴리까지 알려주는 것은 벅찬 일일 것이다. 그러나 꾸준히 이 괴리를 좁혀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교육의 목표를 생각해본다. 단순히 좋은 대학 입학일까. 일단 좋은 대학에 나왔다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지 않는다. 좋은 대학에 입학했던 사람들과 실제 같이 일을 해 보면 `좋은 스팩`대비 실력이 별로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좋은 대학이 일에 대한 능력을 보장하지 않는다. 좋은 대학에 나오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일에 대한 실력도 좋다. 높은 연봉도 받는다. `저녁이 있는 삶`이 있을까.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야근에 주말 출근까지 하는 삶이 행복할까. 


흔히들 오류에 빠지기 쉽다. 남들 보기에 괜찮은 삶을 위해서 말이다. 재수를 해서라도 알아주는 대학에 들어간다. 회계사, 세무사 등의 시험을 준비하다 좀 더 목표를 키워 `로스쿨`도 기웃거려본다. 그러다 이 길도 아니다 싶은지 다른 `사`자를 모색한다. 의사? 의과대학에 가기 위해 다시 수능을 봐야 하나. 사법고시를 10년 준비하다 아주 늦은 나이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는 경우도 흔하다. 자신이 진정 뭘 하고 싶은지, 뭘 잘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남들이 하니까, 남들 보기에 있어 보이니까`로 인생을 허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일이 앞으로도 유망할지 여부는 살펴보지도 않는다. 이런 폐해를 해결하기 위해 `자유학년제` 등 학창시절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하지만, 현실은 학원 뺑뺑이에 선행학습이 채우고 있다. 


교육의 목표는 대학을 넘어 자기가 원하는 분야에서 제 몫의 경제활동을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자기가 무엇을 잘 하고, 잘 할 수 있고, 노력한다면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거야말로 교육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는 과정일 것이다.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시작으로 긴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하나의 인격체를 갖춘 성인으로 성장한다. 그 인격체의 먼 미래까지 내다볼 수 있는 교육 목표, 교육 철학 등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선 뭔가에 실패했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관용과 경제적인 안전망이 갖춰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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