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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야 Nov 08. 2019

평균은 어디에도 없다

제3장 초등학교 교육에 대한 단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아이가 어떤 아이로 자라길 바라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그냥 뭐 평범한 아이. 공부는 중간 정도만 하면 되지 뭐” 나도 우리 아이가 그냥 평범한 아이로 자라길 바란다. 공부도 평균 정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뭐가 평균이고 뭐가 평범한 것인가. 평범, 평균이란 말처럼 허상은 없다. 나는 우리나라 교육이 이렇게 천차만별일 줄 몰랐다.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아이가 전국 평균 수준의 초등학교 1학년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을 알고 입학하길 바랐다. 그런데 그 기본적인 소양에 대한 것을 어떤 곳에서도 알 수 없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되지 않느냐고? 인터넷을 보고서는 더 알기가 어려웠다. 누구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뛰어놀게 하라고 하고, 또 다른 누구는 이곳저곳 학원에 다녀야 된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학원에 다녀야지, 중간에 가려고 하면 가고 싶어도 받아주는 학원이 없다는 얘기도 한다. 한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글은 안 떼도 상관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글에 영어까지 갖춰 입학시키는 경우도 흔하다. 


아이를 초등학교에 먼저 보낸 지인에게 물어봐도 답은 시원찮았다. “요즘 우리 아이는 유치원에서 이것 배우더라”하면 지인은 “우리 아이는 아직 하나도 모르는데..”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초등학생도 모르는 것을 왜 유치원생이 배워야 하지란 생각이 절로 든다. 


초등학교 전에 다니는 유치원 교육은 천태만상이다. 어떤 아이는 유치원 때 한자자격시험을 땄다고 한다. 유치원 주도 하에 말이다. 한자자격시험을 땄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한글을 자유자재로 읽을 줄 안다는 것이다. 거기에 덤으로 한자를 안다는 것이고  엄마, 아빠 없이 처음 가본 낯선 학교 교실에서 40분 이상 앉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어떤 유치원은 초등학교에서 사라진 받아쓰기 시험을 보기도 한다. 아이가 다녔던 유치원에선 한글 받아쓰기 시험을 넘어서 영어 단어 딕테이션(dictation) 시험을 보기도 했다. 


엄마표 영어 공부를 반년 이상 했을 때였다. 영어에 대한 흥미가 생긴 듯 했고 아이 영어 실력도 점점 좋아진다고 느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주눅이 든 채 “난 영어를 못해”라고 말했다. 왜 그러냐니까 얼마 전에 유치원에서 영어 딕테이션(dictation)을 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S로 시작하는 단어 10개를 불러주면 스펠링(spelling)을 쓰는 시험이다. swing, ski, snow, swim 등의 기본적인 단어였다. 그러나 영어를 제대로 모르는 아이가 이런 단어의 철자를 완벽하게 쓰려면 보통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은 10개를 모두 다 맞았는데 자기는 3개 밖에 못 맞았다”고 말했다. 난 “3개나 맞았다고?” 하면서 칭찬을 해줬는데 아이는 별로 만족스럽지 않은 눈치였다. 나는 그래서 아이에게 “엄마는 네가 왜 지금 그런 것들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오늘 몰랐을 뿐, 너는 몇 달 후 아니 몇 년 후에는 다른 아이들처럼 똑같이 알게 돼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아이는 기분이 안 풀리는 듯 했다. 나는 `토끼와 거북이` 얘기까지 꺼냈다. 거북이가 토끼와의 경주에서 처음엔 졌는데 결국엔 거북이가 이기는 그런 얘기 말이다. 유치원생이 영어 단어 시험을 봐야 할까. 그것도 영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영어유치원이나 영어 학원이 아니라 일반 사립유치원에서 말이다. 영어 단어를 몇 개 더 쓸 줄 안다고, 한글 받아쓰기를 잘 한다고,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싶었다. 그러나 막상 아이가 느끼는 것은 다른 듯 했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영어단어 받아쓰기를 하고부터 자꾸 나한테 문제를 내달라고 한다. 유치원에서 또 다시 그런 시험을 볼 경우 다른 아이들만큼 문제를 맞히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듯 했다. 내가 문제를 내줬을 때 틀리면 아이는 또 실망했다. 아직 뭔가를 평가받기엔 이른 데다 평가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데도 아이는 계속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유치원 교육에 기준점이 없다. 누리과정이 있지만 과연 누리과정으로 초등학교 준비를 하는 데 충분할까를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앞서 말했듯이 상당수 부모는 비교적 부모의 말을 잘 들을 나이인데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 아이에게 많은 사교육비를 들인다. 


내가 자랄 때와는 너무 다른 세상이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할 때 한글을 몰랐다. 내가 어릴 때 살았던 동네가 너무 시골이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나는 어린이집, 유치원도 안 다녔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 전에 다녔던 곳은 1년간 다닌 웅변학원이 전부였다. 그리고 `뽀뽀뽀`나 `하나둘셋` 같은 TV프로그램을 보는 게 전부였다.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 엄마 말로는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받아쓰기 시험을 보면 100점을 곧잘 맞아와 엄마에게 기쁨이 됐다고 했다. 그냥 딱 그 정도가 우리 엄마가 바라는 정도였고 나 역시 우리 엄마의 기대치를 충족시킨다는 적당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러나 아이가 사는 세상은 다르다. 교육의 양극화가 상당히 심해졌다. 어느 동네, 어느 초등학교에 다니느냐에 따라 교육의 수준이 다르다. 어떤 학교에선 학교가 끝나고 가방을 집에 던져놓고 놀이터에 가는 것이 그 학교 아이들의 평균일지 모른다. 또 다른 학교에선 학교가 끝나고 노란 학원 버스를 타고 전전하는 게 그 아이들의 평범한 삶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를 어떤 환경에 밀어 넣은 것인가는 아직 어린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결국 부모의 몫이다. 개천에서 용도 나지 않지만 한 번 생긴 격차 또한 잘 줄어들지 않는다. 빈부격차도 쉽게 해결하지 못하지만 교육의 양극화 역시 마찬가지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공식적으로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의 시험을 보지 않는다. 이는 아이들에겐 시험의 부담을 줄이는 고마운 교육 방침일지 몰라도 교육의 양극화는 더 커진다. 시험이란 게 있을 때에는 선행학습을 하다가도 최소한 시험 기간에 현재 배우는 것을 공부하게 된다. 그런데 시험이 사라지니 굳이 현재 배우는 것을 공부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러니 초등학생이 중고등학생이 배우는 수학 문제를 푸는 등 선행학습 경향은 더 심해진다. 시험이 없기 때문에 현재 배우는 것을 굳이 열심히 하기보다 당장 선행학습을 가르치는 학원 시험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기 때문에 느끼는 스트레스는 줄어들었을지 모르지만 그 자리를 학원 시험이 대신하기 때문에 과연 스트레스가 줄어든 것인지 의문이다. 


정반대의 경우도 생긴다. 또 어떤 아이들은 시험을 보지 않으니 현재 배우는 것조차 공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선행학습을 하면서 공부에 열을 올리는 아이들과 시험을 보지 않으니 그냥 노는 아이들 간에 학습의 양극화가 심해진다. 물론 선생님에 따라 아이들에게 단원평가라도 볼 것인지, 그냥 시험을 아예 보지 않을 것인지가 결정된다. 선생님 자율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쪽지 시험이라도 본 아이, 한 번도 그런 시험을 보지 않은 아이가 나뉘게 된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공식 첫 시험인 중간고사를 보고 충격을 먹게 된다. 부모들이 학원 선생님한테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시기도 이 때라고 한다. 학원에서는 분명히 아이가 잘 한다고 했는데 시험을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 자기 공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 후 대학 입학까지의 시간은 길지가 않다. 고작 5년. 그 5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다음의 삶이 결정된다. 그러기에 5년은 너무 짧다. 이는 공부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시간도 짧다는 얘기다. 양극화된 교육환경에서 평균을 찾기는 상당히 어렵다. 차라리 어떤 환경에 속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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