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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야 Nov 08. 2019

제3장 초등학교 교육에 대한 단상

“어휴, 나는 다른 거 다 필요 없어. 우리 애가 꼴찌해도 빵점 맞아도 돼. 행복하고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좋겠어..”


이런 말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묻고 싶다. “정말?, 진짜?” 학교 공부에서 꼴찌하고 빵점 맞아도 신나게 놀기만 하면 아이가 행복할 것이라 여기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업무 평가 꼴찌 받은 직장인이 행복할까. “괜찮아, 난 일은 못 하지만 회식 때 날리잖아. 음주가무는 내가 1등이지..”라고 생각한다고? 그러면 차라리 음주가무를 전문으로 하는 업을 찾아서 재능을 발휘하는 게 낫지 않겠나. 


사회적 비난의 대상인 ‘아이를 달달 볶는 대한민국 문제 엄마’라는 프레임에 벗어나기 위한 대외용 멘트이거나 상황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직장 내에서 업무 평가를 꼴찌 받게 되면 일단 상사를 원망한다. 그리고 자괴감이 들고 다른 사람들이 알까봐 두렵다. 창피하다. ‘이 일이 나한테 안 맞는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들이 드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생각이 안 든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아이라고 안 그럴까.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자기만 못한다면 이거는 좀 이상하다고 여기는 게 자연스럽다. 무조건적으로 `아이는 놀아야 행복해`라는 틀에서 벗어나 아이의 욕구, 욕망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먼저다. 그 욕구, 욕망은 아이마다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와 아이의 욕구, 욕망을 최대한 비슷하게 가져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람과 해님의 내기`만큼 인간의 욕구를 잘 이해한 동화책은 없는 것 같다. 바람이 부니 오히려 겉옷을 움켜쥐었던 나그네가 따듯한 해가 비추니 스스로 옷을 벗었다. 나그네 옷 벗기기 게임에서 해가 이겼다. 강제로 바람을 일으켜 옷을 끌어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나그네가 스스로 옷을 벗게끔 만드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 해가 너무 뜨거워 피부를 새까맣게 태울 지경이라면 어떨까. 나그네는 다시 긴 옷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는 적당히 비췄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 `적당히`의 기준은 아이마다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옷을 벗고 싶게끔 만드는 해님이 돼야 한다. 그 해님이 되기 위해선 아이의 욕구를 이해하고 그 욕구가 충족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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