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생활

남편 저녁을 좀 내려놓자

해주고 실망하고

by 정희정

나는 배고픈걸 못 참는 편이다. 그렇다고 많이 먹는 것도 아니다. 천천히 조금씩 아주 자주 먹는 편이다. 체구는 마른 편이지만, 씹는 속도가 매우 느리다. 그래서 병원이나 직장에서 제한된 시간안에 밥을 먹는 것이 나에게는 불편하기만 하다. 혼자서 먹는 밥이 익숙하고 편하다.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앞니가 살짝 나온편이어서 (친척중에 언니가 교정을 했다) 교정이라는 걸 했다. 웃을 때마다 생쥐같이 약간 튀어나온 이가 거슬렸었나보다. 사촌언니의 교정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 교정붐이 일기도 했지만, 약간 임상시험 처럼 초보에게 걸려든 것 같기도 하다. 앞니를 맞추려고 안쪽 사랑니, 어금니를 포함해 총 6개의 치아를 뽑아야만 했으니 말이다. 결국 앞니를 맞추고 뒤에 이가 맞지 않았다. 잘 씹기만 했던 나의 치아는 그대로 안녕~ 이었다. 어금니가 부족하고 어금니가 맞물리지가 않아 잘 씹어지지를 않았다. 꼭꼭 씹어야 하는 밥이 급하게 넘겨야만 하는 밥이 되어버렸다.


중간중간 초코파이 같은 달달한 것이나 빵종류를 먹으면 그래도 낫다. 일하는 중간중간 간식을 챙겨먹을 수 있는 직업이 좋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어느날, 점심이 부실했는지 오후 4~5시경 배가 고프다고 한다. 나는 늘상 그때되면 배가 고픈지라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배고프단 이야기를 잘 안하는 사람이 배고프다고 하다니. 저녁을 무엇으로 준비할지 머리가 굴러간다. 집에 먹을 것이 없으니 장도 봐야 한다. 퇴근하고 어떤 걸 사갈지 대충 생각해간다.

집앞 마트로 향한다. 저녁메뉴로 딱 정하지는 않은 상태였는데, 배가 많이 고픈날은 닭도리탕이 그렇게 맛있다. 나도 남편도 아이들도 좋아한다. 그래서 닭도리탕으로 결정했는데.. 마트에 닭이 다 나갔다고 한다. 누군가 닭을 모조리 사갔다고! 아니 오늘이 무슨날인가? 초복,중복, 말복도 아닌데 무슨 날인지 기념일인지 모르겠지만 남은 닭은 없었다. 닭이 없다니.. 실망.

다른 메뉴로 바꿔야 한다. 옆을 보니 토실토실 살이 탱탱한 삼겹살이 눈에 들어온다. 보통 우리는 냉동삼겹살을 사두는 편인데, (생삼겹은 비싼편이기도 하다) 그날은 배고프다는 남편을 위해 삼겹살을 구워주기로 한다. 삼겹살은 은근히 귀찮다. 후라이펜에 삼겹살을 굽는 일은 인내를 요하는 일이다. 기름이 튀는 것까지 감수하며 그 곁을 지켜야만 하는 일이다. 누군가를 위해, 남편을 위해, 출퇴근 장장 4시간의 거리를 매일 오고가는 남편의 식사를 위해 삼겹살을 구워주기로 했다.


1차로 삼겹살을 굽고 전날 배달온 쭈꾸미볶음을 곁들일까 생각한다. 저녁 8시가 넘어가는 시점(보통 8시반정도에 남편은 도착한다) 남편에게 연락이 온다.


"조금 늦어질거같아.."


삼겹살은 구워두면 딱딱해지기 때문에 맛이 없다. 그래서 오는 시간을 봐가며 아이들을 한번씩 돌보며 그렇게 삼겹살 굽는 시간을 조정한다. 시계를 자주 보는 편이다. 올때 되었나? 지금 구우면 되려나?? 중간에 배고파서 삼겹살을 집어먹으면서 삼겹살을 굽고 데운다. 쭈구미도 올리려고 불앞에 섰는데 남편이 늦게 온단다.


해주고 실망하고 속으로 욕할거면서.

근처 술모임이 있으리라는걸 직감으로 알아챈다. 저녁을 준비해둔 내마음도 식어버렸다. 당신이 저녁을 준비했어도 안먹으면 화내고 속상할거면서. 나도 그랬다. 이거저거 챙겨먹이려고 한 나도 속상하고 늦게 온다고 연락하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저녁에 제시간에 오면 늘 식탁에 혼자 앉아 밥을 먹고(나와 아이들은 제각각 저녁을 챙겨먹는다) 늘 그렇듯 컴퓨터 책상 앞으로 가지만 그래도 집에 제시간에 오는 것이 좋다.


바르O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직장과 일을 병행하기 쉽지않다. 육아와 장보기를 동시에 하는것도 쉽지 않다. 퇴근길에 장을 봐오는 과정도 절대 쉽지 않다. 이런저런 일들이 비집고 들어오는데 우리는 먹어야 하고 저녁을 차려야 하고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장을 봐야 한다. 그래서 반찬은 주로 사서 먹는 편이고 쭈꾸미와 같은 특식은 배달도 이용해보았다. 남편의 저녁시간을 맞추어가며 삼겹살을 구울 때, 늦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내가 해준다고 하고 내가 실망하고 내가 화가 난다.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다른 방법을 생각해본다. 남편의 저녁 상차림도 중요하지만, 삼겹살은 아닌걸로.. 그리고 닭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저녁에 데워먹을 수 있는 바르O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해주고 욕하고 그러지말자. 배고프면 알아서 골라서 데워먹을 수 있으니 그것도 좋겠다.

저녁은 준비하지만 데우기만 하면 되는걸로 준비하기로 한다. 김치오뎅찌개도 좋고 닭도리탕도 좋다. 일주일에 한두번은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날도 있으니 서로 편하게 나름의 방법을 찾게 된다.


집 앞에 NBB 노브랜드 버거가 생겼다.

비가 추르르 오는 날, 둘째 아이가 바깥으로 나가자고 한다. 마침 아빠 퇴근하는 시간이다. 그래? 그러자 그럼. 서둘러 내복바지 그대로 입혀 신발을 신기고 아이우산을 들려주었다. 아직 우산을 바로잡기 힘들어하지만, 그래도 제법 우산잡는 맵시가 난다. 아빠를 마중하러 가는 길이라는 걸 알까? 엉터리로 우산을 잡긴 했지만, 비는 맞기는 했지만 그래도 즐겁단다. 신호를 기다리고 횡단보도를 건너 깜깜한 길거리에서 아빠를 발견한다.


"아~빠"


남편의 웃음을 보고 우리는 함께 새로생긴 노브랜드버거로 향한다. 역 앞에 생긴 노란색의 간판이 눈에 띈다. 비가 와서 축축한 거리지만 아빠와 함께 걸어가는 아이의 발걸음은 신이난다. 고소한 감자튀김의 냄새가 콧 속으로 들어온다. 밝은 실내안은 고소한 냄새와 사람들로 북적인다. 처음 와본 노브랜드버거에서 처음 주문해보는 버거를 맛보고 도톰해서 맛이 더 좋은 감자튀김을 함께 먹었다. 아이도 케찹을 쿡쿡 찍어 먹고 나와 남편은 크게 한입 벌려 앙 깨물어 먹었다. 소스의 맛도 좋고, 햄버거의 맛도 좋았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을 때, 반겨주는 가족이 있고 따뜻한 밥이 있으면 참 좋다. 하지만 남편 저녁을 좀 내려놓으려고 한다. 굳이 삼겹살이 아니라도 준비해둔 음식이 있으면 그것도 좋겠다. 요즘 잘 나와있는 간편식을 데워먹기도 하고, 일주일에 한번은 노브랜드 저녁데이트를 즐겨도 좋겠다. 퇴근길, 집이 아닌 바깥에서 아빠를 반기는 아이를 보면 더욱 반가울테니까 말이다. 피자를 좋아하는 남편과 아이를 위해 냉동피자도 간식으로 넣어둔다.


지금은 요리가 어설프고 솜씨없지만, 엄마의 쌓여가는 손길이 언젠가는 일품이 될 거라 생각한다. 해주고 실망하지 말고, 이제는 생활의 편의를 가능한 즐겨보리라. 남편의 저녁을 좀 내려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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