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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화장실 앞에는 회전 책장이 있다.

나에게 맞는 책을 찾고 있습니다

by 정희정

나른한 날도, 기분좋은 날도,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그런 날. 가까이에 있는 책을 펼친다. 앞에서부터 보지 않는다. 그저 중간을 펼치고 읽어 보고 싶으면 읽고 그렇지 않으면 넘긴다. 맨 앞의 목차를 살펴 보기도 하고 저자가 궁금한 날은 저자 이력을 보기도 한다. 맨 뒤 장의 추천사를 읽어보거나,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그런 글들을 읽기도 한다.


우리 집 안방 화장실 앞에는 회전 책장이 있다.

회전 책장을 갖고 싶었다. 단지, 그 이유다. 아이들에게도 어른에게도 놀이가 되는 회전 책장. 빙글 빙글 돌아가는 재미난 회전 책장. 어릴 적 즐겨 타던 회전 놀이기구 처럼, 회전 책장은 나에게 그런 의미다. 아이들에게 책은 재미로 와야 한다. 그러기에 어릴 때부터 재미난 그림책 부터, 이쁜 그림이 아기자기한 그림책 까지 참 많은 책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나도 그림책에 빠져들었다. 화장실을 들어갈 때 회전 책장을 보고,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꺼내든다. 잠을 청할 때, 수면등을 켜 놓고 읽고 싶은 책을 꺼내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읽고 싶은 책이 한 권, 두 권 쌓이면 어느 새 침대 위는 또 다른 책장이 된다. 세울 수 없다 뿐이지만, 여기 저기 널리고 쌓여있는 책들은 침대 위 작은 책장이다.


오늘도 책을 찾고

매일 하는 의식이 있다. 핸드폰으로 내가 매일 들여다보는 어플이 있다. 온라인 서점 어플. 알라딘. 알라딘의 신간을 살펴보는 일이 나의 일과다. 심심할 때,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나의 집은 27층이라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화장실에서 잠시잠깐, 대기를 할 때, 커피를 마실 때에도 그저 아무 생각없이 이 어플을 여는 거다. 마치 요술램프 알라딘처럼 나에게 매일매일의 선물 같은 존재다. 보고 싶은 책은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 새로 나온 신간 중 아이의 책이 있으면 함께 공유한다. "사줄까" 라고 물으면 아이는 좋다고 한다. 아이와 나와의 소통창구다.

알라딘 굿즈는 또 다른 재미다. 일반 서점에서 책을 사면 사은품이 그리 많지는 않다. 알라딘 굿즈에는 의외로 상품들이 즐비하다. 살림에 도움이 되는 수저부터 시작하여 따듯하게 덮을 수 있는 이불, 가방, 수면등에 이르기까지 책을 사면 적립금내에서 살 수도 있고, 추가 금액을 결제하여 내가 원하는 굿즈를 살 수 있다. 어느 순간은 내가 책을 사는 건지, 굿즈를 사는 건지 모를 정도로 굿즈가 좋다. 읽고 싶은 책을 사고 적립금에 쌓인 순간 그 동안 찜해두었던 굿즈를 사기도 한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오기도 하고, 그저 보관만 하고 있는 굿즈도 있다. 이런 굿즈나 저런 굿즈나 좋다. 나에게 필요가 없으면, 우리집에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기도 하고 특히 나의 아이들은 첫 번째 손님이다. 알라딘 택배상자가 도착하면, 딸아이와 나는 어김없이 가위를 들고 온다. 상자를 주욱 자르고 안에 담긴 소중한 손님을 대한다. 정성스럽게 한 책 한 책 꺼낸다. 함께 온 굿즈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한다. 이런 맛이 책을 사나보다. 요즘처럼 바깥 외출이 하기 어려운 날은 더욱 책이 반갑다. 매일 한 권씩 보지는 않는다. 워낙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는 편이라 끝까지 읽어본 지도 오래되었다. 그래도 나는 책이 좋다.


책을 마음껏 다루어라, 책을 마음껏 써라

책은 나의낙서장이다. 원래 그러지는 않았다. 도서관에서 빌릴 때는 더욱 그랬다. 책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도서관 책은 모두가 함께 보고 공유하는 공용도서이기 때문이다. 작은 도서관, 먼 거리의 도서관, 책 배달을 해주기도 하는 도서관 등등을 이용하면서 많은 책들을 접했다. 그리고 최근 공공기관이 먼저 문을 열지 않게 되면서 서점에서 책을 사거나 온라인 서점을 많이 이요하게 되었다. 근처 일산의 교보문고가 내가 자주 가는 서점이다. 아이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한다. 아기자기한 문구류도 많고 생활에 필요하고 일 할때 쓰임이 좋은 물건을 함께 고르기도 한다. 직접 책을 보고 살 수 있어서 나는 교보문고 오프라인 서점에 자주 가는 편이다.

코로나의 상황이 시작되었을 때, 거의 매일을 들르던 도서관이 문을 닫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그날, 노트북으로 회사 일도 정리를 하고자 해서 도서관에 들러 주차를 했다. 웬일로 주차장이 널널하다. 도서관에 가까이 가서 보니 현재 코로나사정으로 인해 도서관을 폐쇄한다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이런...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볼 수 없고 도서관에 위치한 카페에서 일을 할 수 없다니. 난감했다. 앞으로 언제까지 공공기간 도서관은 문을 닫아야 하는 걸까? 사람들과의 접촉을 막기 위해서 책과의 거리도 그만큼 멀어지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마음도 멀어진 도서관 대신 서점의 책들을, 사고 싶은 책들을 여지없이 집으로 들였다. 일년 에 한 두번꼴로 어마어마한 책들을 정리하고 빈 자리에, 책장의 빈 칸에 또다시 새로운 책들이 꽂힌다. 나는 그 책들을 여지없이 이용한다. 단지 나를 위해서,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나의 흥미와 만족을 위해서 책들은 나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책을 펼치고 나의 기분을 적는다. 내일 할 일을 적는다. 나의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색연필로 죽죽 줄을 긋는다. 그림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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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자리한 유용한 아이템, 회전책장과 북웨건

나에게 맞는 책을 찾고 있습니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일까? 매일 책을 보고 책을 고른다. 온라인 서점어플에서 책을 찾는다. 안방 화장실 앞에는 회전 책장이 있고, 공용 화장실 앞에서 북웨건이 있다. 책만 놓지는 않는다. 화장실 앞에 필요한 수건이나 휴지를 놓기도 하고, 아이 방 앞이라 요즘 온라인 수업을 하는 아이에게 필요한 교과서를 꽂아두기도 한다. 매일 학원이나 학교를 다녔던 시절, 마땅히 걸어둘 곳이 없었는데 북웨건에 있는 예쁜 고리에 신발주머니와 책가방을 걸어두었다. 눈길을 돌리는 순간순간에도 늘 곁에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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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책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원래 책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쩌다보니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정말 어쩌다보니. 아이 책을 읽다보니,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보니 그림이 좋고 책이 좋아지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 책 이야기를 공감나누는 날이 오다니, 요즘은 더욱 그렇다. 10살인 첫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진 않지만, 하나의 책을 보면서 함께 이야기를 공감나눈다. <우리는 원래 더 귀여웠다>는 특히 그렇다. 나의 어린시절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아이는 이 책을 보면서 엄마도 그랬어? 엄마도 이렇게 놀았어? 엄마도 이런 걸 먹었어? 늘상 물어본다. 그 곳에는 나의 추억이 담겨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을 일기로 적어놓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주신 커다란 회사공책에다가 나는 일기를 적고 그림을 그렸다. 나의 일기를 보고 좋아하고 나의 글에다가 아버지가 적어주신 글은(지금으로 치자면 아버지가 댓글을 달아주셨다!!)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런 아버지 곁에서 나는 자랐고 글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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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책도 엄마책도 우리집 낮은 책장에 함께한다

아이 말고 엄마를 위한 책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아이보다는 엄마 먼저 책을 들여다보는 게 좋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던 시절에도 아이교육을 위해, 부부심리를 위해 나는 책을 가까이 했다. 사서 보는 것보다 그때는 도서관이 열려있었기에 늘상 도서관에서 10권 20권이 되는 책들을 빌려와서 읽었다. 책에다 낙서를 할 수는 없으니 기억에 남는 구절, 마음에 새기고 싶은 구절은 핸드폰으로 찍어두었다. 공책에 좋은 문구는 적어두기도 했다.(지금은 버리고 없지만)알뜰히 쓰고 난 공책은 과감히 버렸다. 그간의 모아두었던 많은 구절과 말새김들은 나의 첫 번째 책에서 마음껏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의 만족을 위해서다. 아이 책을 사면서도 내가 좋아하고 내가 읽어보고 싶은 책을 위주로 고르게 되었다. 엄마의 안목은 아이의 안목에도 영향을 끼친다. 내가 아기자기하고 예쁜 그림체를 좋아하다보니, 그런 류의 그림책을 그르게 되고 또 아이에게 읽어주게 되었다. 아이도 매일 그림체가 좋은 그림책을 접하다보니 점점 안목이 키워진 것 같다. 그리고 학습만화를 좋아하고 짱구, 놓지마 정신줄과 같은 우리가 흔히 보는 책들도 아이는 좋아하게 되었다. 요즘 초등학생 아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흔한남매와 반지의 비밀일기도 아이의 책 사랑 열풍에 한 몫했다. 역사에 대한 관심은 설민석 선생님에서 시작되었다. 맨 처음 <선을 넘는 녀석들>을 텔레비전 채널에서 보기 시작하면서 설민석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에 대한 관심이 역사에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역사에 대해 알고 싶다고 말하고 예전 역사기록을 알게 되면서 그에 대해 조잘 조잘 말하는 아이. 설민석 선생님의 팬이 되었고, 꼭 한번은 설민석 선생님을 만나보고 싶다고 말한다. 언젠가 한번은 꼭 설민석 선생님을 만나게 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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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위해 고른 책이 엄마

책을 쓰기위한 밑작업은 책을 고르기에서 시작한다

이미 집에 있는 책들을 꺼내들었다. 이전에 써 둔 글들을 불러내었다. 다른 책들은 어떻게 썼을까? 목차와 구성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한 책 한 책 살펴보았다. 한 번에 구매의욕을 일으키는 책도 있었고 펼쳤는데 아닌 책도 있었다. 이런 책 저런 책을 두루두루 살펴보았다. 책을 쓰기위해서는 다양한 방법과 시도들이 있는데 나의 경우는 책을 고르는 일부터 시작했다. 엄마에 대한 책, 글쓰기에 관한 책, 그냥 보통의 책 다양한 책들을 고르고 살피면서 하나하나가 소재가 되고 일상의 이야기들이 글이 되었다. 이런 내용을 써도 될까? 했던 것도 글로 담았다. 이후에 편집과정에서 대거 삭제가 될 운명이어도 삶 속에서 묻어난 이야기들은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가 아니면 다음 책에서 또 언급하면 될 일이다. 그러다보니 아끼지 않고 글을 써내려갔던 것 같다.

일상의 모든일이 글이 되고 일상의 모든 경험들이 내가 책을 쓰기 위해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시간이 있어서 쓴 것이 아니고 글을 쓰는 시간을 냈다. 아이가 잠시 놀이를 할 때도 그랬고 일을 하면서도 어떤 내용의 글을 쓸까? 생각하고 카톡창에 옮겨담았다.


다양한 책을 읽고 접하다보니 나도 다양한 소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꼭 한 분야의 책만 쓰는 것은 아니기에 늘 안테나를 곤두세운다. 지금이 제일 소중한 시간이고 내 인생의 남은 날 중 가장 젊은 날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고 평화롭게 글을 쓰는 지금 이 시간도 흘러지나갈 것을 안다. 그렇기에 지금 내 마음을 남기고 기록해두지 않으면 연기처럼 사라져버릴 것이다. 내가 이 곳에 있었고 이런 생각을 했으며, 누군가를 생각했고 또 누군가를 그리워했음을 나는 기억할 것이다. 막연히가 아니라 한 글자 한 글자씩 새겨진 글자체를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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