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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서인간 Aug 27. 2021

바쁘다는 착각

"요즘 많이 바쁘시죠?" 

오랜만에 만나는, 그다지 친하지는 않은 사람이 인사를 건네옵니다. 

곰곰 생각해 보면 이상합니다. 

'바쁘냐고 단정하듯 물어보는 말이 어떻게 안부를 묻는 말이 될 수 있을까?' 


이유는 '바쁘다'는 말이 담고 있는 감춰진 의미 때문입니다. 

"요즘 많이 바쁘시죠?"라는 말의 속뜻을 번역해 봅시다. 

'당신은 중요한 분이니까 분명히 바쁘시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바쁘다'는 말은 '중요하다'는 말과 동의어로 쓰입니다. 

"미안한데 내가 지금 좀 바빠서...."라는 말은 

'내가 지금 중요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 얘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다들 바쁘신 가운데에도 이 자리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여러분 모두 중요한 일을 하느라 시간이 모자란 분들인데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오셨으니, 

이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바쁘다는 말이 거짓인 것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는 항상 바쁩니다. 

일도 해야 하고 

카톡도 봐야 하고 

뉴스와 주식시장도 체크해야 하고 

점심에 누구와 무엇을 먹을지도 정해야 하고 

주말에 놀러 갈 계획도 세워야 하고 

내 몸도 편치 않은데 부모님 병환도 신경 써야 하고....... 

신경 쓸 일이 끊이질 않습니다. 

주어진 시간에 얼마나 많은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지 조언하는 콘텐츠가 

서점과 인터넷에 차고 넘칩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잠시만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나는 바쁜가? 


바쁘다면 왜 바쁜가? 


나를 바쁘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 일을 당장 하지 않는다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대개 바쁜 것은 중요한 일 때문이 아닙니다. 

마음이 다급하기 때문입니다.

다급한 마음을 걷어내고 보면, 

당장 하지 않는다고 큰일 날 중요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 


미워하고 근심하고 걱정하는 마음도 잠시 놓고
사랑하고 즐겁고 기뻐하는 마음도 
잠시 쉬고 놓아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생각하지 마세요. 

하루에 십 분, 혹은 삼십 분 혹은 한 시간 정도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 분, 삼십 분, 한 시간 동안 
진정시킨 고요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 수 있다면
그렇게 산 하루가 진정한 행복입니다. 

<쉬고, 쉬고 또 쉬고> 무여선사가 들려주는 禪 이야기 中   


급하다고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바쁘다고 중요한 사람은 아닙니다. 


바쁜 척하지 않고, 중요한 척하지 않고 

혼자서 조용히 가만히 명상에 들어갑니다. 


나는 지금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가장 여유롭습니다. 


신수정 作   Way to lanai airport. Lanai, Hawaii      종이에 과슈와 잉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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