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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Nov 10. 2022

뒤늦게 코로나에 확진된 가족(4/4)

코로나의 끝..

격리 기간 중 이틀만 열이 났던 아이는 격리 기간 내내 아내와 나한테 매달려 놀아달라 졸랐다. 그 장단에 맞추어 놀아주다 지친 내가 소파나 침대에 쓰러지면 아이는 짜증을 부렸다. 책도 싫고 유튜브도 싫다고 했다. 와이프가 물었다.


준형아 왜 그래? 왜 이렇게 짜증을 많이 내?

몰라. 그냥 짜증이 나.


아이는 코로나가 끝나고 화가 늘었다. 엄마 아빠한테 미운 말을 쓰기 시작했고, 하지 말라는 대꾸도 자꾸 했다. 와이프는 아이가 사춘기에 벌써 들어선 아이 같다고 했다. 이유도 없는 짜증을 받아주던 와이프와 나는 몇 번을 받아주다 답답함에 화를 냈다.


너 왜 그래!


가시가 돋친 소리에 아이는 움츠러들었다. 움츠러든 아이는 고슴도치가 되어갔다. 고슴도치가 된 아이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격리가 끝난 주 주말 동물원에 가자고 말했다. 아이는 신이 났고 어깨춤을 추며 동물원 구경 코스를 짜겠다고 말했다. 아이가 다행히 할 일이 생겼다는 생각에 그러라고 했지만 이내 동물원 지도를 내놓으라는 아이의 말에 식은땀이 났다. 동물원 홈페이지에 지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홈페이지에 접속했지만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 아이가 짜증을 냈다.




코로나가 끝나고 화가 많아진 아이와 다르게 와이프와 나는 코로나 후유증을 겪기 시작했다. 공통적으로 체력이 떨어졌다. 휴직 중인 나는 다행이었지만 직장을 나가야 하는 와이프는 바닥을 치고 있는 체력을 가지고 다시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퀭한 얼굴에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서 학교(직장)에 나가니 아이들이 보자마자 걱정 어린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선생님! 아직 쉬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학생이면 쉬었지. 내가 너네였면 안나왔지.




우리 집을 휩쓸고 간 코로나는 유독 나에게 깊은 흔적을 남겼다. 냄새, 체력을 뺏어갔고 멍한 머리, 무기력감, 기침을 남겼다. 코로나 격리는 해제됐지만 잠을 자고 싶은 유혹은 계속되었다. 안 되겠다 싶어 나를 위한 음식을 하기로 했다.

주방에 터덜터덜 걸어가 텅 빈 스텐 믹싱볼을 식탁에 올렸다. 설탕 한 숟가락, 고춧가루 한 숟가락, 다진 마늘 한 숟가락, 맛술 한 숟가락, 진간장 한 숟가락, 고추장 한 숟가락을 믹싱볼에 넣고 한데 휘휘 저어 양념장을 만들었다. 인덕션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불을 켰다. 프라이팬이 달구어지며 열기를 내뿜자 정육점에 들러 산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넣고 볶았다. 후추를 살짝 뿌려 코끝을 강하게 자극하는 돼지고기 냄새를 살짝 지웠다. 빨갛던 돼지고기가 그 색을 잃어갈 즈음 미리 만들어 두었던 빨간 양념을 넣어 다시 빨갛게 만들었다. 양파는 귀찮으니 빼고 냉동실에 넣어둔 잘라둔 대파를 뿌려 대충 마무리했다. 제육볶음이었다.

예쁜 그릇에 담을까 했지만 귀찮음이 나의 미적 감각을 이겼다. 양념을 했던 믹싱볼에 뜨끈 뜨근한 제육볶음을 넣고 밥통에서 숟가락으로 밥을 한 덩이 떠서 올렸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에 하얗고 빨간색의 대비가 강렬했다. 하지만 입맛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격리가 끝나고 2주가 지나자 아이의 짜증은 잦아들었다. 와이프와 나는 조금씩 체력을 회복하게 되어 주말에 다시 공원을 찾았다. 코로나 시작 전에 봤던 하늘은 없었다. 파르스름하고 깨끗한 가을 하늘이 높이 떠 있었다. 오랜만에 찾은 공원에 아이는 신이 나서 오른쪽 팔을 빙빙 돌리며 저 멀리 뛰어간다. 아이가 소리친다.


아빠!! 캐치볼 하자!!


아.. 다시 아픈 척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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