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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Mar 06. 2024

베트남ㆍ라오스 나홀로 배낭여행(2024-01-10)

Ep32 아름다운 강변마을 농키아우로 이동하다

좁은 도미터리 침대에서 자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다. 몸을 뒤척이기도 힘든 공간에서 몇 번이나 잠에서 깼다. 다른 사람들은 아마 몇 배나 더 힘들었으리라. 내 코 고는 소리 때문에. 날이 밝자 서둘러 짐 정리를 했다. 깜깜한 방에서 맘껏 어질러 놓은 짐을 챙기기가 쉽지 않았다. 


8시 30분이 되자 툭툭이 픽업을 왔다. 라오스의 툭툭은 태국이 쏭테우와 많이 닮았다. 동남아 다른 나라의 툭툭은 호출한 사람 한 그룹만을 태우는  "택시형"인데 비해 라오스의 툭툭은 비슷한 행선지의 여러 그룹의 승객을 함께 태우는 "버스형"이다. 


농키아우로 가는 차는 밴이다. 좌석이 15개 정도인데, 빈 좌석 하나 없이 승객이 꽉 찼다. 농키아우까지는 약 150킬로, 3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편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밖의 경치를 구경하면서 가다 보니 별로 지루한 줄은 모르겠다. 라오스를 여행하다 보면 시외로 나오면 인가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베트남이 국토면적 33만 평방킬로에 인구가 99백만으로서 인규밀도가 약 300명인데 비해, 라오스는 24만 평방미터에 인구 770만 명으로서 인구밀도가 30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태운 밴은 푸른 강을 끼고 달린다. 메콩강의 지류인 남우 강이다. 루앙프라방과 농키아우는 남우강으로 연결되는데, 남우강은 루앙프라방에서 메콩강과 합류한다. 두 곳을 연결하는 배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해본다. 도로는 강과 나란히 달리다가 어느 순간 강에서는 멀어졌다가도 다시 강과 마주친다. 이런 길이라면 얼마를 달리든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드디어 농키아우에 도착했다. 높은 산 사이로 남우강이 흐른다. 그동안 사진과 동영상에서 봐왔던 익숙한 풍경이다. 그렇지만 실제 풍경은 한층 더 가슴에 울림을 준다. 강에는 다리가 걸쳐져 있는데, 평범한 시멘트 다리이지만 주의의 절경과 어울려 황홀한 풍경을 만든다. 자연과 인공의 조화라 할까나...


농키아우는 작은 마을로 강 양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다리가 두 곳을 연결해 준다. 대부분의 인가는 차를 내린 이쪽 강변에 있지만, 몸은 자연히 다리 쪽으로 향한다. 다리를 건너 조금 더 걸어가니 인가가 끝이 난다. 아직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다. 다시 다리 쪽으로 돌아오다 방갈로라 쓰여있는 화살표 팻말을 보았다. 화살표를 따라 내려가니 강 바로 옆에 세워진 방갈로가 나온다. 아주 좋아 보여 숙소를 이곳으로 하려 했으나 만실이란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을 이틀에 50만 낍으로 빌렸다. 더블 침대가 놓여 있는 괜찮은 방이다. 방 현관 밖은 베란다 형식으로 되어 있어 앉아서 시간 보내기도 좋다. 

마을에 아이들이 여러 명 놀고 있다. 마침 베트남에 사파에서 산 말린 과일이 있길래 아이들에게 한 줌씩 나누어 주었다. 시골아이들이라 더 없이 순박하다. 사진을 찍으려고 핸드폰을 드니 이 녀석들 경험이 많은지 모두 받은 말린 과일을 손에 쥐고 앞으로 내밀면서 포즈를 취한다. 센스 만점!


날씨가 꽤 덥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온몸이 땀이다. 샤워를 하고 쉬면서 햇빛이 약해지면 나가보기로 했다. 오후 4시쯤 되니 햇빛도 힘을 잃는다. 느긋하게 산책길에 나섰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남우 강은 절경이다. 내일은 무엇을 하며 보낼까 생각하다가, 그건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은 일단 산책을 즐기기로 하였다. 다리를 경계로 상류와 하류는 약간 다른 느낌을 준다. 상류 쪽이 산과 강이 어울려 절경을 이루는데 비하여 하류 쪽은 숲과 어울려 조금 부드러운 듯한 풍경을 이루고 있다. 


차를 내렸던 곳이 마을의 중심인 것 같다. 그곳에서 큰길을 따라 걸었다. 한참을 걸으니 인가가 끝이 나고, 왼쪽으로 강변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강변길로 내려왔다. 남우강은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아름답다. 강변길을 걸으며 남우강의 경치를 만끽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강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강변 길을 통하여 다시 다리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벌써 어둠이 깔렸다. 그동안 한산하던 마을에 어디 숨어 있었던지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와 마을 거리와 식당이 북적인다. 대부분 관광객들이다. 낮에는 손님이 있는 식당이 거의 없어 좀 안쓰러운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두 집 건너 있는 식당들이 모두 손님들로 꽉 차있다. 역시 라오스는 어딜 가나 밤이 되어야 생기를 찾는다.


다리 옆에 과일을 파는 행상이 있어 이것저것 주워 담았다. 작은 가게를 하면서 옆에 식탁을 2개 갖다 놓은 작은 식당이 보인다. 돼지고기 볶은밥을 주문하였다. 며칠 전부터 자꾸 술이 당긴다. 베트남 추운 곳을 여행할 때는 술생각이 나지 않았으나, 라오스로 와서는 계속 술이 마시고 싶다. 비어 라오 블랙을 한병 주문하였다. 식사를 끝내고 다시 비어 라오 큰 캔을 한 개 샀다.


숙소 테라스에 앉아 열대 과일을 안주로 비아 라오(Beer Lao)를 마시며 또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곁가지 이야기 11: 아메리카 인디언과 동남아인


동남아 사람들은 이동을 할 때 거의 오토바이를 이용한다. 걸어 다니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으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도 "가뭄에 콩나기"이다. 오토바이를 타는 동남아 사람들을 보면 나는 항상 아메리카 인디언이 연상된다.


웨스턴 영화 탓인지 모르겠지만, 내겐 아메리카 인디언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떼를 지어 말을 타고 질풍같이 달리는 모습이다. 백인 카우보이나 보안관도 말을 자신과 한 몸처럼 다루지만, 인디언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족탈불급이다.


그럼 아메리카 인디언은 언제부터 말을 탔을까?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콜럼버스 이후인 것만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원래 아메리카 대륙에는 말이 없었고, 유럽인들이 가져가 퍼트린 것이기 때문이다. 필그림 파더즈가 북미에 정착한 것은 1620년이니까 말이 보급된 것은 아마 그 이후일 것이다. 중남미에서 건너왔다면 조금 시대가 앞설 수도 있을 것이고.

그 뒤 불과 1-2백 년 만에 인디언은 완전히 말타기의 귀신이 되어버렸다. 영화를 보면 그들은 안장을 얹지도 않은 말을 타고, 갈퀴만을 잡은 채 질풍처럼 달린다. 달리는 말 위에서 활을 쏘고, 말 위에서 곡예를 부리듯 온갖 현란한 기마술을 다 보여준다. 그들에게 말을 전해준 백인들에게는 턱도 없는 재주들이다.


오토바이는 서양에서 발명되었다. 그러나 지금 서양에서는 호사가들이나 오토바이를 타지만 동남아에서는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들에게는 국적 오토바이 제조사들  하나 없지만, 전 국민이 생활의 일부로서 오토바이를 이용하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 오토바이로 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작은 오토바이  한 대로 아빠, 엄마, 아들, 딸, 할머니 전가족이 외출을 하고, 엄청난 크기의 짐짝도 쉽게 운반한다. 아메리카 인디언이 유럽의 말을 자신들의 도구로 재탄생시켰듯이, 동남아 사람들도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오토바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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