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 스쿠터를 타고 루앙프라방 시내 둘러보기
루앙프라방에서 하루를 더 보내고 내일 농키아우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숙소에서 지금 사용하고 있는 방이 이미 이전에 예약되어 있어 더 이상 사용이 곤란하다는 것이다. 남아있는 프라이빗 룸은 없어, 6인 공용 도미터리 룸을 사용하든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난감하게 되었다.
다른 숙소로 옮기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그래 딱 하루인데 도미터리 룸에서 한번 지내보자. 어차피 한번 경험해보고 싶었던 일인데.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10시가 좀 넘어 숙소를 나섰다. 오늘은 오토바이를 타고 루앙프라방을 둘러볼 생각이다. 작년에 왔을 때도, 어제도 도보로 돌아다녔으니까 아무래도 찾는 곳에 한계가 있었다. 오토바이라면 시내 전체를 쉽게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숙소 근처에서 렌트를 하면 편하지만, 구시가지로 가려면 작은 다리를 하나 건너야 하는데 오토바이로 그 다리를 건널 자신이 없다. 걸어서 다리를 건너갔다. 어제도 그랬지만 걸어서 다리를 건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곳 사람은 잘 걷지를 않는다. 오토바이를 타거나 하다 못해 자전거라도 탄다. 그래서 동남아에서는 "걸어 다니는 것은 개와 외국인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15만 낍을 주고 스쿠터를 빌렸다. 지금까지 루앙프라방 시가 어느 정도 넓은지 몰랐다. 메콩강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건물이 없는 곳까지 달렸다. 그리고 수직으로 뻗은 길로 또 달렸다. 이렇게 달려보니 루앙프라방 시에서 어느 정도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곳은 사방 2×4 킬로 정도, 시가지라 할만한 곳은 사방 1킬로도 되지 않았다. 그동안 도보로 돌아다닌 곳이 시의 극히 일부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거의 전부였다.
땡빛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것도 힘들다. 메콩강변에 과일 주스를 파는 작은 노점이 보인다. 자리를 잡고 앉아 코코넛을 주문한다는 것이 망고라 해버렸다. 조금 있다가 주인 여자가 망고를 손질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때서야 주문을 잘못한 것을 알았다. 망고 스무디를 만들어 왔는데 아주 시원하고 맛있었다. 망고를 주문하길 잘했다.
한참 쉰 후 다시 스쿠터를 탔다. 한 두세 시간을 타고나니 골목골목 안 가본 데 없이 모두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렇게 다니니 루앙프라방 도시 전체 모습이 잡힌다. 더 이상 돌아다닐 곳도 없다. 야시장이 열릴 때까지 기다릴까 생각도 해봤으나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한다. 4시쯤 스쿠터를 반납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가 도미터리니까 방에 들어가기가 싫다. 로비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해가 진다. 저녁을 먹어야겠다. 식당에 가기도 싫어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상가에 갔다. 시장이라고는 할 수 없고 2~30여 개의 가게들이 모인 곳이다. 고기를 구워 파는 곳에 가서 돼지고기 몇 가지와 닭다리 한 개를 샀다. 그리고 오렌지 2개를 사니 저녁거리로 충분하다. 숙소로 돌아와 얼음을 넣은 옥수수 술과 함께 먹었다.
싫어도 방에는 들어가야 한다. 샤워를 하고 내 자리를 찾아 누웠다. 짐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 보이는 대로 짐을 그냥 쌓아두고 내일 정리하자. 누워서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방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커튼을 조금 열고 보았다. 헉! 여자다. 남녀 혼용 도미터리인 것 같다. 오늘은 빨리 자는 것이 상책일 것 같다.
돈(지폐)이 가져야 할 여러 가지 조건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용자에게 이 돈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즉 얼마짜리 돈인지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용자가 돈을 쓰면서 이 돈이 얼마짜리인지 쉽게 알 수 없다면, 화폐로서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라오스 돈을 쓸 때마다 분통이 터진다. 지갑에 여러 종류의 돈이 들어 있는데 어느 게 얼마짜리 돈인지 금방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돈을 지불할 때마다, 그리고 거스럼 돈을 받을 때마다 그것이 얼마짜리 지폐인지 확인하기 위하여 위로 보고, 아래로 보고, 돌려 보고, 뒤집어 보고 한다. 그러다 보니 돈을 계산할 때는 항상 몇 가지 지폐를 늘어놓고 어설프게 한 장 한 장 세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작년에 보름, 이번에 며칠 이렇게 라오스에서 지내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보통 지폐는 4개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아라비아 숫자로 금액이 적혀있다. 그런데 라오스 지폐는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한 면에 아라비아 숫자로 적힌 금액은 하나밖에 없고, 대신 아라비아 숫자 비슷하게 생긴 글자가 눈에 띄기 좋은 위치에 표시되어 있어 바로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아마 5000이라면 "오000", 20000이라면 "이0000"과 같은 방법으로 표기한 듯하다.
아래 사진이야 그래도 가지런히 놓고 찍은 것이라 비교적 쉽게 구분이 가는데, 지갑에서 돈을 꺼낼 때는 정말 아라비아 숫자는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아라비아 숫자로 표시된 금액을 찾는다고 허둥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게다가 돈의 단위까지 커서 아라비아 숫자를 찾더라도 동그라미 수를 헤아려야 한다.
라오스 화폐 속의 인물은 카이손 폼비한으로서 왕정을 폐지하고 총리와 국가주석을 지내다 사망한 인물이다. 라오스 지폐는 8종류가 있는데, 모두 카이손 폼비한의 얼굴 사진이 들어가 있다. 그가 라오스 국민들에게는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돈을 쓸 때마다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의 잘못은 아닌데...